KBO리그에 비(非) FA 다년 계약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겨울 SSG 투수 박종훈(5년 65억원), 문승원(5년 55억원)을 시작으로 SSG 외야수 한유섬(5년 60억원), 삼성 외야수 구자욱(5년 120억원)이 FA 자격을 포기하며 대박을 쳤다.
올 겨울에도 롯데 투수 박세웅(5년 90억원)에 이어 NC 투수 구창모(7년 132억원)가 비FA 다년 계약으로 큰돈을 손에 쥐었다. 아직 병역이 해결되지 않은 선수들도 다년 계약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구창모는 FA 취득까지 최소 2시즌이 남은 상황에서 7년 장기 계약으로 NC에 완전히 눌러앉았다.
새 시즌이 오기 전 추가로 비FA 다년 계약이 나올 분위기다. ‘골든글러브 유격수’ 오지환(LG)의 4년 40억원 FA 계약이 내년 시즌으로 끝나는데 LG는 FA가 되기 전 다년 계약을 시도하고 있다. FA 재자격 선수가 다년 계약을 한 적은 아직 없다.
비FA 다년 계약은 트렌드가 되고 있다. 구단들은 내부 선수를 FA로 빼앗기는 것에 부담이 크다. FA 이후 가격이 폭등하기 전 비교적 합리적인 선에서 다년 계약으로 묶어둬 변수를 차단하고자 한다. 여러 팀에서 내부 주축 선수들과 다년 계약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KBO리그에 다년 계약 바람이 불면서 향후 FA 시장에 특급 매물은 점점 매말라가고 있다. 최근 3년간 엄청난 FA 광풍이 몰아쳤지만 대어급 선수들이 묶이면서 내년부터 찬바람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수들도 FA가 되기 전 다년 계약으로 보장받는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변수가 많은 FA 시장에서 평가받는 것보다 소속팀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받는다면 위험 부담이 적고 안정적이다.
하지만 반드시 비FA 다년 계약이 정답은 아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SSG와 다년 계약을 체결한 한유섬이 만약 올 겨울 FA 시장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한유섬은 올해 135경기 타율 2할6푼4리 121안타 21홈런 100타점 OPS .850으로 활약했다. LG에서 FA로 풀린 채은성의 126경기 타율 2할9푼6리 138안타 12홈런 83타점 OPS .791에 비해 타율은 낮아도 홈런이나 OPS 등 전체적인 타격 성적은 한유섬이 위였다. 구장 효과를 보정한 wRC+(조정 득점 생산력)도 한유섬이 129.8로 채은성(122.7·스포츠투아이 기준)보다 높았다. 한유섬이 1살 많긴 하지만 거포 수요가 높은 리그에서 채은성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유섬은 이미 묶인 몸이었고, 채은성은 지난달 한화와 6년 최대 90억원에 FA 사인하며 더 큰 계약을 따냈다. 올해 1루수였지만 원래 포지션이 우익수였던 채은성은 이번 FA 시장에 거의 유일한 특급 외야수 자원이었다. 한유섬과 구자욱 모두 비FA 다년 계약으로 시장에 나오지 않으면서 채은성의 가치가 급등했다.
한유섬의 올해 성적은 다년 계약으로 얻은 심리적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FA로이드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부담감에 부진한 경우도 있다. 선수마다 성향이 다르고, 시장 상황과 미래는 늘 불투명하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앞으로 FA 시장 매물이 말라갈수록 특급 선수들의 가치가 더더욱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원소속팀의 다년 계약을 거부하고 FA 시장에 나오는 용감한 선수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