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 소름 끼치게 닮은 두 우승팀 얘기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2.12.15 08: 00

[OSEN=백종인 객원기자] 그라운드에 꽃가루가 날린다. 여기저기서 샴페인이 터졌다. 관중석은 축제 분위기다. 온통 환희가 넘친다. 뜨거운 포옹, 격정적인 하이파이브, 감격의 눈물도 흐른다. 감동적이고, 멋진 우승의 순간이다.
그리고 일주일 만이다. 뜻밖의 소식이 들린다.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뉴스다. 단장이 경질됐다. 오른팔이던 보좌역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는 연장 계약 무산이다. 구단이 제시한 조건은 1년이었다. 액수도 너무 낮다. 차라리 ‘나가라’는 말이 낫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미디어는 ‘모욕적’이라고 표현했다.
인사권자는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 조직은 그가 있던 3년간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단장이) 성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개인적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그와 가족의 안녕을 기원한다.” 극히 신사적인 서술이다. 자신의 처사와는 정반대다.
또 며칠이 지났다. 한 매체의 보도다. 떠난 단장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 “야구는 무수한 숫자로 이뤄졌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 있는 의미를 읽어야 한다. 결국 게임은 컴퓨터가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다.”
쓴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측근’이다. 구단주 옆에서 자주 보이던 인물이다. 자문역이라는 직책을 가졌다. 홈구장 출입 패스도 가졌다. 선수들, 관계자와 친분이 두텁다. 틈틈이 운영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짐 크레인(오른쪽)과 GM 제임스 클릭
요즘 화제가 되는 스토리다. 인천 문학동에서 벌어진 일과 비슷하다. 그런데 놀라운 원작이 있다. 한달 전, 태평양 건너 텍사스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바로 우주인들(휴스톤 애스트로스)의 얘기다. 아마 드라마나 소설이라면 저작권 시비가 걸릴 정도다. 그만큼 전개 방식이 유사하다.
그들은 월드시리즈 챔피언이다. 우승 직후 단장(GM, 제임스 클릭)과 결별했다. 평소 구단주(짐 크레인)와 사이가 별로였다. 구단 운영 방식의 이견 탓이다.
그 사이에 ‘비선’이 존재했다. 제프 배그웰이다. 애스트로스의 전설적 1루수다. 원 클럽 맨으로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다. 그는 GM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추구하는 노선이 달랐다. 숫자놀음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사이버매트릭스를 숫자놀음으로 치부했다.
결국 공석인 된 GM 후보로도 거론된다. 물론 본인은 부인한다. “난 아니다. 전혀 생각이 없다. 지금 이 상태에 충분히 만족한다.” 구단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GM은 물색 중이다.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지만 측근의 역할은 계속된다. FA협상을 위해 플로리다까지 날아갔다. 호세 아브레우 계약에도 비선의 이름이 거론된다. 입단식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OSEN DB
지난 달 말이다. 필자가 글 하나를 올렸다. ‘두 구단주, 우승 그 후…’(http://osen.mt.co.kr/article/G1111999260)라는 제목이었다. 애스트로스와 랜더스 구단주의 얘기였다. ‘한 쪽은 독선과 전횡으로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됐다. 다행스럽게 다른 쪽은 아닌 것 같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에필로그가 이랬다.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장면이다.
‘눈물과 헹가래, 감격의 와중이다. 누군가 목발을 짚고 나타난다. 경기 중 구급차에 실려간 한유섬이다. 가장 먼저 구단주가 달려간다. 부둥켜안고 감격을 나눈다. 그러다가 뭔가를 발견한다. 캡틴의 목에 우승 메달이 없다. 그러자 망설임 없이 자기 것을 벗어서 걸어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눈물을 글썽인다.’
인상적인 장면은 스틸 컷으로 남았다. 그러나 왠지 색이 바랜 느낌이다. 몇 주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