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장기 계약 첫 해 불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든 구자욱(29·삼성)은 시즌 후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를 자청했다. 저연차 선수 위주로 꾸려진 마무리 캠프에 프랜차이즈 스타가 참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박진만 감독도 구자욱의 강한 의지를 높이 샀고 후배들과 함께 땀 흘릴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곡 소리가 날 만큼 훈련 강도가 높았지만 구자욱은 힘든 내색 없이 열심히 훈련을 소화했다. 박진만 감독은 "구자욱이 한 번쯤은 내게 와서 힘들다고 할 줄 알았는데 훈련 프로그램을 모두 소화했다"면서 "구자욱의 마음가짐이 참 좋다. 레귤러 멤버가 이곳에 와서 그렇게 하는데 후배들도 열심히 보고 배웠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14일 오후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난 구자욱은 "정말 얻은 게 많았다"고 마무리 캠프 참가 소감을 전했다. 그는 "최근 들어 (훈련량을 줄여) 체력을 비축하고 경기할 때 모든 걸 쏟아내는 추세였는데 이렇게 많은 훈련을 소화하면서 얻은 게 많았다. 후배들도 이런 경험을 거의 못해봤을 텐데 다들 얻은 게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구자욱은 이어 "요즘 유튜브를 비롯해 야구를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해졌다. 하지만 야구는 머리와 눈으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직접 부딪쳐봐야 한다. 몸이 기억하게끔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얻은 게 많지 않나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마무리 캠프에 참가한 선수들은 "자욱이 형이 잘 챙겨주셔서 너무 좋았다.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쉬는 날에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주셨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10살 가까이 차이 나는 후배들과 함께 땀 흘렸던 그는 "후배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에 저도 같이 힘낼 수 있었다. 후배들과 함께 하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났다"고 했다.
또 "그동안 후배들과 어울릴 만한 기회도 없었고 후배들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먼저 다가가지 못했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후배들과 가까워질 수 있어 좋았다. 후배들을 챙기는 게 정말 행복하고 뿌듯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구자욱은 이어 "후배들과 보다 가까워지는 좋은 기회였다. 후배들을 더 잘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이 커졌다고 할까. 선배님들께서 저를 챙겨주셨듯이 저도 이제 후배들을 잘 챙겨줘야 할 때"라고 내리사랑을 약속했다.
구자욱은 지난해 타율 3할6리 166안타 22홈런 88타점 107득점 27도루로 잊지 못할 시즌을 보냈다. 데뷔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시상식에 참가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1년 만에 상황이 확 달라졌다. 조용히 개인 훈련을 소화하며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이다.
"제 자신에게 많이 부끄러웠고 라이온즈를 너무나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응원해주신 팬들께 죄송한 마음이 가장 컸다. 올 시즌의 아쉬움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한다. 이 아쉬움이 저를 더 강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다시 무대에 서야겠다는 마음을 다잡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구자욱에게 김상수는 친형과 같은 존재다. 까까머리 시절부터 아낌없는 나무처럼 자신을 챙겨줬던 든든한 선배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없다는 아쉬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듯.
"어릴 적부터 상수 형을 존경해왔다. 상수 형은 정말 리더십이 강하고 선수들을 잘 챙긴다. 후배들에게 정말 든든한 선배이자 선배들이 볼 때도 정말 멋진 후배다. 제가 삼성에 처음 왔을 때 상수 형이 있어 적응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어 너무나 아쉽지만 상수 형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구자욱의 말이다.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한 구자욱은 "오랜만에 마무리 캠프에 참가해 몸이 기억하는 훈련을 하고 왔기 때문에 거기서 얻은 걸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스프링캠프에 참가할지 생각할 뿐이다. 당장 다음 시즌 어떻게 하겠다는 것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구자욱은 14일 척수 소뇌성 운동 실조증을 앓고 있는 정서연(17) 환우를 찾아가 후원금 500만 원을 전달하고 정서연 환우와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뜻깊은 하루를 보낸 구자욱은 "서연이가 건강을 회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하루 빨리 건강을 되찾아 야구장에서 만나길 바란다"고 했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