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을 바꿔 입었더니 대한민국 잠수함 레전드와 현역 국가대표 잠수함이 한 팀에 있다. 만년 유망주였던 이채호(24·KT 위즈)에게 트레이드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지난 5월 22일 정성곤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SSG 랜더스에서 KT 위즈로 이적한 이채호. 당시 두 선수의 인지도 차이로 인해 KT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냐는 시선이 많았다. 정성곤은 2015년 입단 후 1군에서 150경기를 뛴 좌완투수였던 반면 2018년 입단한 이채호의 1군 등판은 2021년 3경기가 전부였다. 여기에 KT는 이강철 감독 부임 후 늘 좌완투수 기근에 시달리던 팀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이채호는 긁지 않은 복권이었다. 그리고 KT가 조심스럽게 복권을 긁었더니 당첨의 행운이 찾아왔다. 이채호는 올해 38경기 5승 무패 3홀드 평균자책점 2.95를 기록하며 트레이드 성공신화를 썼다. 2018 SK 2차 6라운드 55순위 입단 후 1군 3경기 평균자책점 7.20이 전부였던 투수의 대반전이었다.
이채호는 OSEN과의 인터뷰에서 “좋았던 부분이 많았다. 물론 경험이 없다보니 막바지 체력 관리는 아쉬웠지만 이제 풀타임을 처음 치른 거라 차차 개선하면 된다. 많은 걸 배웠던 시즌이었다”라고 한해를 되돌아봤다.
가장 큰 소득으로는 1군 38경기 등판을 꼽았다. SSG 시절 늘 강화에만 머물렀던 이채호는 “SSG 때보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확실히 많은 경기에 나가다보니 적응이 되더라”라고 신기해하며 “7월 이후로는 등판하면 자신 있게 내 힘을 다 쓸 수 있었다. 좋은 긴장감이란 것도 느껴봤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라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울러 “트레이드 당시만 해도 KT 팬들이 의문점을 가지셨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라며 “다행히 좋은 모습을 보이며 그런 인식을 바꾼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물론 SSG로 간 정성곤 선수도 잘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올해 친정 SSG의 통합우승을 지켜보는 기분은 어땠을까. 이채호는 “안 그래도 오원석, 최민준에게 연락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최민준에게는 반지 도둑이라고 놀렸다”라고 웃으며 “SSG는 이제 다른 팀이고, 트레이드가 안 됐어도 아마 내게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커리어는 KT에 와서 새롭게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이채호가 만년 유망주에서 주전으로 거듭난 결정적 이유는 ‘사이드암 전설’ 이강철 감독의 족집게 레슨이었다. 강철매직 아래 재탄생한 이채호는 “이강철 감독님을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감독님이 잠수함투수 전문가라 내가 몰랐던 것들, 잘 안 됐던 것들,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들을 옆에서 잘 지도해주셨다”라며 “여기에 고영표 형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 역시 잠수함투수는 잠수함투수에게 배워야한다”라고 흡족해했다.
이채호의 2023시즌 목표는 용두사미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는 “올해는 체력 관리가 안 됐다. 몸 관리도 미흡했다. 운동을 많이 했는데 나도 모르게 과부하가 걸린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힘을 쏟지 못했다”라고 아쉬워하며 “내년에는 마지막에도 야구를 잘하고 싶다. 올해 느낀 점이 많아 내년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이채호는 내년 시즌 KT의 허리를 지킬 핵심 키플레이어로 꼽히고 있다. 올해 첫 풀타임에도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만큼 내년을 향한 기대가 벌써부터 커지고 있다. 이강철 감독은 최근 마무리캠프에서 "올해 이채호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 같다"라고 굳은 신뢰를 드러냈다.
이채호는 “사실 올해가 첫 풀타임이라고 하지만 4, 5월 SSG 2군에 있다가 트레이드가 됐다”라며 “내년에는 개막 엔트리부터 시작해 끝까지 잘하는 시즌을 치르고 싶다. 어떤 상황이든 내 공을 던져서 경기 시간을 단축시키고, 위기를 깔끔하게 막는 투수가 되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라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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