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 축구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후반 추가 시간 손흥민의 어시스트를 받은 황희찬의 역전골로 2-1로 승리, 극적으로 경우의 수를 뚫고 ‘도하의 기적’을 연출했다.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16강에 오른 한국 축구에 연일 찬사가 쏟아진다. 지난 4년간 대표팀을 이끈 벤투 감독의 뚝심 있는 지도력부터 대회 내내 마스크를 쓰고 뛰는 손흥민을 비롯해 선수들의 원팀 투혼이 국민적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경사를 바라보는 야구계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야구와 축구는 오랜 기간 국내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 스포츠 양대 기둥이다. 국제대회 때마다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라이벌 종목. 야구도 분발해서 월드컵 16강 못지않은 성적을 내야 한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으로 전성기를 구가한 한국야구는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을 끝으로 최근 국제대회에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7년 WBC에서 1라운드 조기 탈락으로 고척돔 안방에서 망신을 당했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따고도 선수 선발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으로 선동열 국가대표팀 감독이 국정감사장에 불려나가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은 이 일로 자진 사퇴했다.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이끈 김경문 감독이 다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고난을 겪었다. 2019년 프리미어12에선 일본에 두 번 모두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했고, 지난해 여름 도쿄 올림픽에서 충격적인 노메달로 집중 포화를 맞았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혹평 속에 야구 팬심도 식었다.
야구계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내년 3월 제5회 WBC가 열린다. 지난해 KT 통합 우승을 이끌며 WBC 사령탑에 선임된 이강철 감독의 어깨가 무겁다. 최근 2개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으로 고개를 숙인 WBC 대표팀이라 이번에는 물러설 수 없다. 최소 8강 본선 진출이 기본으로 축구붐에 맞서기 위해선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4강 이상까지 올라가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한국은 일본, 호주, 중국, 체코와 함께 B조에 편성돼 내년 3월9일부터 13일까지 일본 도쿄돔에서 예선 1라운드를 치른다. 조 1~2위에 8강 본선 진출 티켓이 주어진다.
허구연 KBO 총재가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순혈주의를 깨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계 선수들도 예비 명단에 포함했다. 골드글러브 내야수 토미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외야수 롭 레프스나이더(보스턴)가 합류했지만 최종 승선을 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코리안 메이저리거로 김하성(샌디에이고)과 최지만(피츠버그)이 있고, KBO리그를 평정한 예비 메이저리거 이정후(키움)도 있지만 2008~2010년 전성기 국가대표팀에 비해 전체적인 무게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특히 투수 쪽에 물음표가 크다. 올해 KBO리그 최고 투수로 떠오른 안우진(키움)이 학교 폭력 꼬리표를 떼야 대표팀 합류가 가능한데 불확실하다. 또 다시 김광현(SSG), 양현종(KIA)에게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국제대회 성적은 종목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축구붐이 일어난 이 시기 야구 꿈나무들은 골짜기 세대가 되고 말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 글러브와 배트를 쥔 꿈나무들이 황금 세대를 이루고 있다. 월드컵 16강 축제 뒤에 열리는 WBC가 한국야구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다. 그만큼 큰 부담과 책임감을 안고 준비해야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강철 감독의 고민이 갈수록 더 깊어질 듯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