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릿수 등번호를 쓰던 육성선수가 90억원 FA 대박을 쳤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대기만성’ 채은성(32)의 인생 역전 스토리는 한화가 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한화는 지난 22일 6년 최대 90억원 조건으로 채은성을 FA 영입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채은성의 야구 인생 이야기를 잘 안다. 육성선수로 시작해 2군 백업, 2군, 1군 백업, 주전까지 모든 과정을 거쳐 고생한 것을 보상받았다”며 역경을 이겨낸 채은성의 존재가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한화 중심타자 노시환도 “채은성 선배님이 오셔서 반갑다. LG에 계실 때도 진짜 잘 친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1루에 가면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했다”며 “선배님은 스토리가 엄청나다. 처음부터 잘한 게 아니라 연습생으로 들어와 대기만성했다. 옆에서 보고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순천 효천고 출신 채은성은 지난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에도 지명을 받지 못했다. 당시 LG 스카우트였던 염경엽 현LG 감독이 육성선수로 데려와 어렵게 프로에 발을 들였다. 포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입스에 걸리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의장대에서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2013년 등번호 102번을 달고 퓨처스리그에서 홈런 9개를 치며 두각을 보였다.
이를 발판 삼아 2014년 정식선수로 1군에 데뷔한 채은성은 2016년부터 풀타임 주전 외야수로 도약하며 LG 중심타선을 이끌었다. 9시즌 통산 1006경기 타율 2할9푼7리 992안타 96홈런 595타점으로 꾸준한 성적을 내며 FA 대박까지 이뤘다. 프로 미지명 선수로는 LG 김현수(4년 115억원+6년 115억원) 다음 가는 최고액 계약.
채은성은 “육성선수 과정을 밟아 커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처음에는 조금 하다 그만둘 줄 알았는데 어떻게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감회가 새롭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좋은 지도자 분들을 많이 만난 덕분이다. 어릴 때 가졌던 그 마음을 항상 되뇌이고, 되새기면서 ‘내 자리는 없다’는 생각으로 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포기할 위치나 상황도 아니었다”고 되돌아봤다.
손혁 한화 단장은 “밖에서 볼 때 채은성은 차분한 선수였는데 막상 만나서 얘기해 보니 강단이 있더라. (협상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에 대해 물어보는 등 팀에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도 깊게 생각하고 고민한 게 보였다”면서 “LG에서 고참 선수들을 보고 배운 것에 대해 말했다. 김현수에게서 특히 많은 것들을 본 것 같다”며 고참으로서 채은성의 존재감을 기대했다.
채은성과 동기인 한화 포수 최재훈은 “장난으로 1루에 나가면 은성이에게 ‘한화 외야지?’라고 했는데 이렇게 올 줄 몰랐다. 계약되는 순간 잘됐구나 싶었다. 은성이가 전화 와서 도와달라고 했는데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서로 같이 힘쓰면 우리 팀도 잘 될 것이다”고 말했다. 올해 팀 내 최다 16홈런을 터뜨린 김인환도 “중심타선을 이끌어줄 선배가 왔다. 다른 선수들도 좋은 영향을 받으며 많이 배울 것이다”고 채은성 효과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채은성은 “구단이 좋은 대우를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 좋은 조건으로 한화에 온 만큼 책임감도 크다. 단장님도 팀 상황과 고참으로서 역할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팀의 중심적인 역할을 강조하신 만큼 솔선수범해서 젊고 활발한 후배들을 잘 이끌겠다”고 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