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은 잠깐이었죠. 제가 못했으니…”
한화 주전 포수 최재훈(33)은 마무리캠프 기간 들려온 팀의 ‘FA 최대어’ 양의지(35·두산) 영입설에 싱숭생숭했다. 단순 ‘설’이 아니었다. 한화는 진지하게 양의지 영입전에 뛰어들어 총력을 기울였다. 친정팀 두산으로 돌아간 양의지가 한화의 정성에 고마움을 전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결과적으로 양의지는 한화에 오지 않았다. 같은 포지션인 최재훈으로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서운한 마음이 있을 수 있지만 잠깐이었다. 올해 내가 너무 못했으니…”라고 인정하며 “의지형과도 통화했고,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자극과 동기 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양의지가 한화에 올 가능성도 머리 속으로 그렸다. 만약 한화에 왔다면 양의지가 지명타자를 맡으며 최재훈과 포수 자리를 양분하는 형태가 됐을 것이다. 최재훈은 “의지형이 우리 팀에 오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진 않았다. 의지형이란 큰 포수가 오면 팀에 분명 시너지가 날 것으로 봤다. 나도 어릴 때부터 의지형을 보고 자랐고, 같이 하면 또 배울 게 많았을 것이다”고 했다.
한화가 양의지 영입에 적극으로 달려든 이유는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젊은 선수들의 모범이 되면서 분위기를 다잡아줄 ‘클럽하우스 리더’로서 가치도 높게 봤다. 최재훈도 이번에 새삼 이 부분을 다시 느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베테랑으로서 어린 선수들을 어떻게 케어하고 끌어올려야 할지 생각했다. 나도 이제 그런 나이가 됐고, 내 야구만 할 게 아니라 어린 선수들까지 끌고 갈 나이가 됐다는 것을 느꼈다. 친구인 (채)은성이도 FA로 왔는데 같이 힘을 합쳐 선수들을 잘 이끌어가고 싶다”는 게 최재훈의 말이다.
실제 마무리캠프 기간에도 최재훈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수비 훈련 때 10살 어린 후배 포수들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박수를 받았다. 최재훈은 “나이 조금 있다고 후배들한테 (훈련 때부터) 지고 싶진 않다. 내가 열심히 잘해야 후배들도 그걸 보고 따라온다”며 “김정민 배터리코치님도 새로 오셨는데 좋으시다. 코치님이 가르쳐주시는 모든 것을 다 빼앗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최재훈은 4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지난 2018년 시즌을 마친 뒤 양의지가 FA 시장에 나왔을 때도 한화는 양의지 영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한용덕 당시 감독이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최재훈과 백업 지시완의 가능성을 보고 단념한 바 있다. 어렵게 잡은 주전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활약을 이어간 최재훈은 지난해 시즌 종료 후 한화와 5년 54억원에 재계약을 체결하며 FA 대박까지 터뜨렸다.
그러나 계약 첫 해인 올 시즌 114경기 타율 2할2푼3리(364타수 81안타) 5홈런 30타점으로 기대에 못 미쳤다. 수비는 건재했지만 타격이 아쉬웠다. 최재훈은 “FA 계약을 하고 나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컸다. 야구 잘해서 팬 분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역효과가 났다. 그러다 보니 주변을 보지 않고 나 혼자서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다. 내년에는 팀 전체를 보며 나뿐만 아니라 어린 후배들까지 편하게 야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