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49) 한화 단장은 지난 21일 저녁 늦은 시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FA 최대어 포수 양의지(35) 측으로부터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양의지의 마음은 친정 두산으로 기울어 있었다. 양의지는 직접 손 단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양의지는 22일 오후 두산과 4+2년 최대 152억원, KBO리그 역대 최고 대우에 FA 계약을 했다.
손혁 단장은 “(양의지가) 결정 후 빠르게 연락해준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채은성 계약에) 더 편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며 “FA는 선수가 고생해서 누리는 권리이고,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데려오지 못하긴 했지만 충분한 금액 이외에 최대한으로 정성을 들였다. 영상 자료도 준비하고, 메이저 선수에 걸맞게 협상했다. 아쉽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화는 양의지에게 4년 130억원, 6년 15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는 연평균 금액으로, 후자는 보장 금액 기준으로 최고액 베팅. 양의지를 향한 한화의 진심은 이런 금전적인 조건이 전부가 아니었다.
지난 18일 서울 모처에서 한화가 양의지를 만난 자리에는 손혁 단장뿐만 아니라 박찬혁(50) 대표이사도 참석했다. 보통 FA 협상 테이블은 단장 이하 운영팀 실무진이 맡는다. 대표이사가 협상 일선에 직접 나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박찬혁 대표와 한화의 진심에 양의지도 적잖게 놀랐다는 후문.
결과만 놓고 보면 한화는 양의지와 계약에 이르지 못했다.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다. 양의지 입장에선 데뷔 후 14년을 몸담은 친정팀 두산이나 최근 4년을 함께한 NC에 비해 한화에 갈 명분이 부족했다. KIA처럼 고향(광주) 팀도 아니었다. 1차 FA 때 큰돈을 번 양의지가 돈만 쫓을 이유는 없었다.
익숙한 환경과 친숙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동시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으니 한화로선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양의지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는 표현으로 정중하게 거절할 만큼 한화의 진심이 충분히 전달됐다. 손 단장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충분히 노력을 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비록 야심차게 추진한 양의지 영입은 불발됐지만 또 다른 FA 강타자 채은성(32)을 6년 최대 90억원 조건으로 잡았다. 지난 2015년 11월 투수 정우람, 심수창 이후 7년 만에 외부 FA 영입. 최근 몇 년간 기대했던 FA 영입이 무산돼 거센 역풍을 맞았지만 채은성을 잡고 7년 묵은 체증을 싹 날렸다.
시즌 중반부터 박찬혁 대표가 그룹 계열사 곳곳을 찾아 발로 뛰며 FA 영입 자금을 넉넉히 확보했기에 가능했다. 대기업 구조상 복잡한 행정 절차가 있었지만 미리 발품을 팔아 FA 시장을 준비했다. 나아가 박 대표는 손혁 단장과 손차훈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를 축으로 직접 전력보강 TF를 꾸려 투트랙 협상을 주도했다. 채은성을 영입했지만 이걸로 끝나지 않고 남은 FA 시장을 주시 중이다.
지난달 선임된 손 단장도 스토브리그 첫발을 성공적으로 뗐다. 손 단장은 “대표이사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대한 자금 지원을 해주신 덕분이다”며 “처음 단장으로 와서 (FA 영입) 하나도 못하고 시작하면 저도 부담이 됐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 대표이사님께 정말 감사하다. 단장 경험이 있으신 손차훈 코디께서도 제가 옆에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