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국 프로야구 스토브리그가 시작부터 활화산이다. 진앙은 구단주와 안방마님이다.
중원을 관장하는 안방마님, 즉 포수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망을 꿈꾸는 이들이 최우선으로 챙기는 포지션이다.
여기에 올해는 변수 하나가 더 생겼다. 뭉칫돈 베팅의 결정권을 쥔 구단주 변수다. 창단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SSG 랜더스 정용진 구단주가 꽤 영향을 끼친 듯 보인다. 정용진 구단주는 2년간의 집중적인 투자로 통합 우승이라는 달콤한 결과를 얻어 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구단주들은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기업인들이다. SSG의 성공사례는 분명 그들의 승부욕을 자극했을 게다.
21, 22일 양일간 터진 대형 FA 포수 계약 소식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시작은 롯데의 유강남 영입 소식이었다. 21일, 롯데 자이언츠는 LG 트윈스에서 FA 포수 유강남을 끌어당겼다. 계약기간 4년에 계약금이 40억 원이고 연봉은 34억 원, 옵션이 6억 원이다. 총액이 무려 80억 원에 이른다.
계약 소식이 공식화되자 덩달아 소환된 인물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다. 신 회장은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도 겸하고 있다. 자이언츠는 ‘투자 불모지’로 팬들의 원성이 자자한 곳이다. 그런 구단이 근래 들어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롯데의 간판타자 이대호가 선수생활을 마감하며 구단에 던진 메시지가 신동빈 회장을 움직였다는 분석이 정설처럼 따른다. 이대호는 지난 10월 8일 은퇴식에서 “성장하는 후배 선수들이 팀을 떠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잘 보살펴 주시기 바란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지는 롯데 자이언츠로 만들어 주시기 바란다”고 구단주를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이대호의 일갈에 구단이 즉각 반응했다. 10월 27일 열린 롯데지주 이사회에서 롯데 자이언츠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190억 원의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롯데건설과 롯데케미칼에서 촉발된 그룹의 유동성 위기에도 이 같은 증자 결정이 났다는 것은 그룹 총수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루 전인 10월 26일 발표된 '안경에이스' 박세웅의 다년계약은 달라질 롯데의 신호탄이었다. 롯데는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박세웅에게 5년 총액 9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투자를 결정했다. 포수 유강남의 영입 소식은 ‘구단주 리그’의 연장선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한 개연성을 갖고 있다.
유강남을 잃은 LG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롯데가 유강남 영입을 발표하던 그 시각, KIA 타이거즈에서 FA가 된 포수 박동원을 데려왔다는 소식을 알렸다. 계약기간 4년에 총액 65억 원(계약금 20억 원, 4년 연봉 총액 45억 원)의 조건이다. 유강남의 80억 원보다는 적지만 총액 65억 원은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이 과정에도 구본능 LG 트윈스 구단주 대행의 의중이 작용했을 거라는 게 야구계의 분석이다. 야구에 넘치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는 구본능 구단주 대행은 11월 6일, 가을야구에서 퇴색한 류지현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전격적으로 염경엽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승부수도 던졌다.
22일 마지막에 터진 폭탄은 폭발음이 더 컸다.
두산 베어스가 FA 포수 양의지와 6년 최대 152억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최대’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4년 후 2년 재계약의 옵션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첫 4년은 계약금 44억 원, 연봉 총액 66억 원이며 2026시즌 종료 후 인센티브 포함 2년 최대 42억 원의 선수 옵션을 발동할 수 있는 조건이다. 종전 김광현(SSG)의 151억 원을 뛰어넘는 KBO리그 역대 최고액 계약이다.
두산 베어스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이번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골적으로 뛰었다.
이미 이승엽 감독을 차기 사령탑으로 앉힌 박정원 회장은 양의지까지 붙잡기 위해 이승엽 감독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도 나갔다. 21일 오후 야구 커뮤니티에 공개된 한 장의 사진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준다. 고층 빌딩 레스토랑의 창가자리로 보이는 곳에서 박 회장은 양의지와 이승엽 감독의 어깨에 손을 얹고 편안한 얼굴로 '인증샷'을 찍었다. 이 사진으로 양의지의 두산행은 일찌감치 기정사실이 됐다.
모(母)기업의 재정 지원으로 꾸려지는 한국 프로야구단의 구조상 선수단 운영이 구단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올 스토브리그처럼 구단주의 개입이 이토록 노골적인 적도 잘 없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