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8일 대전 한화-삼성전. '푸른 피의 에이스' 원태인(삼성)은 2회 1사 만루에서 최재훈의 강습 타구에 왼쪽 종아리를 맞고 쓰러졌다. 통증이 심했지만 선발 투수로서 역할을 다했다. 5회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8피안타 2볼넷 3탈삼진 3실점(2자책)으로 시즌 7승째를 따냈다.
삼성은 왼쪽 종아리 타박상을 입은 원태인이 다음 선발 등판이 힘들 것 같아 1군 엔트리에서 말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원태인의 1군 잔류 의사가 확고해 엔트리 제외 없이 선발 등판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다. 걷는 게 엄청 불편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에이스로서 책임감이 컸던 것.
최근 기자와 만난 원태인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통증을 안고 뛰는 게 팀에 폐를 끼칠 수도 있겠지만 뷰캐넌도 빠져 있었고 팀이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 도움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감독님께서 제 의지를 알아주신 덕분에 (1군 엔트리에서) 안 빠졌다. 때마침 비로 인해 하루 더 쉬고 던질 수 있게 됐다. 그런 책임감 덕분에 10승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통증을 안고 있을 만큼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는 "타구에 맞은 뒤 러닝을 한 번도 못할 정도였다. 생각보다 통증이 되게 오래가더라. 러닝 대신 사이클 머신을 탔는데 스피드가 점점 올라가고 힘이 붙는 느낌이었다. 물론 러닝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체력이 떨어지고 몸에 무거울 때 사이클로 대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올 시즌 잘 던지고도 승운이 따르지 않았던 외국인 투수 알버트 수아레즈를 보면서 에이스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배웠단다. 원태인은 "수아레즈가 제게 큰 울림을 줬다. 올 시즌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불릴 만큼 운이 따르지 않았는데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속상해서 감정을 표현할 만도 한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저는 마운드에서 제 감정을 표현하는 편인데 수아레즈가 감정을 억제하는 걸 보면서 어떻게 하면 팀에 누를 안 끼치는지 먼저 생각하는 걸 배웠다"고 덧붙였다.
4년 차 투수 원태인은 어느덧 누군가의 롤모델이 됐다. 2023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더 이호성과 3라운더 서현원은 "원태인 선배님 같은 투수가 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원태인은 "그렇게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저도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아 야구를 해왔는데 좋은 유망주 후배의 롤모델이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물론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따른다. 원태인은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만큼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후배들과 편하게 지내는 편인데 제가 형들에게 예쁨을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베풀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원태인의 아버지인 원민구 전 경복중 야구부 감독은 아들이 선발 등판하기 하루 전마다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다. 데뷔 첫해부터 1군에서 선발 등판할 때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갓바위에 올라 아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쑥스러워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원태인은 "만약 제게도 똑같은 아들이 있었다면 그렇게 까지는 못했을 거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갓바위에) 올라가는 게 즐겁고 제가 잘 던지게 되면 뿌듯한 마음이 엄청 크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더 잘 던지고 싶고 아버지의 진심을 가슴속에 담고 던지니까 10승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한 원태인은 예년보다 일찍 다음 시즌을 준비할 계획이다. 그는 12월부터 한 달간 타 구단 선수들과 함께 미국 마이애미에서 몸을 만든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어떻게 훈련하는지 배우고 싶다. 좋다고 해서 가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시즌 잘했다면 조금 더 쉴 수 있겠지만 저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다음 시즌을 준비하겠다"는 게 원태인의 말이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