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키움 구단주는 누구예요?”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이 SSG 랜더스 구단주 자격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니 자유연상으로 나오는 질문이다.
야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야 키움 히어로즈의 다사다난한 스토리를 잘 알겠지만, 드라마틱한 한국시리즈의 열기에 이끌려 가을 야구에 눈길을 주고 있는 이들에겐 키움의 구단주가 미주알고주알이다. “왜 저쪽 구단주는 중계 카메라에 안 잡혀요?”
키움 히어로즈에 ‘구단주’는 꽤 오랫동안 잊힌 호칭이다. 구단주 구실을 하는 인물은 있지만 되도록 ‘구단주’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대주주’ 또는 ‘전 대표’라 부른다.
‘전 대표’ 이장석 씨는 바로 며칠 전 ‘가을’ 야구장을 찾기도 했다.
10월 25일 서울 잠실구장을 찾아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 간의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2차전을 관전했다. 수행원 없이 홀로 야구장을 찾은 이 전 대표는 중앙 테이블석에 앉아 무선 이어폰을 끼고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 전후 선수단 방문도 하지 않았고, 말 그대로 야구만 봤다.
이장석 전 대표는 한국 프로야구계에서 영구실격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기피인물이 됐다. 2심에서는 형량이 3년 6개월로 줄었지만 KBO는 같은 해 11월 이 전 대표에게 ‘영구 실격’의 징계를 내리며 이 전 대표를 사실상 리그에서 퇴출시켰다.
KBO의 징계로 팀을 떠났지만 히어로즈의 대주주 지위는 살아 있다. 영구 실격 징계를 받아 구단 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게 했지만 최대주주의 권리까지 몰수할 수는 없는 게 법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이장석 전 대표는 ‘영구 실격’ 이후에도 구단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작년 4월 가석방으로 출소된 이후에는 의혹이 더 짙어지고 있다. LG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관전 장면도 노출되지 않은 게 더 나았을 처지다.
키움 히어로즈 선수단이 보는 이장석 전 대표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구단주’인 셈이다.
반면 SSG 랜더스의 정용진 구단주는 물 만난 고기처럼 야구계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정용진 회장의 랜더스 운영방식은 기업이 주력 사업을 추진하는 모습처럼 전격적이다.
SK 그룹으로부터 와이번스를 1,352억 원에 인수할 때가 그랬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추신수를 역대 최고 연봉(27억 원)에 영입할 때가 그랬으며, MLB 잔류를 고민하던 김광현을 4년 151억 원에 복귀 시킨 추진력이 그랬다. 기업이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M&A과 유사할 정도로 파격적이고 저돌적이다.
구단주 정용진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총사령관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였다.
‘신의 한 수’로 회자되는 김원형 감독 재계약 발표 시점이 그 사례다. SSG는 7일, 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김원형 감독과의 재계약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2승 2패,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점에서 5차전 개시 1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실행된 한 수였다.
SSG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면 김원형 감독의 재계약도 위험하다는 루머가 떠도는 상황에서 팀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노림수였다.
‘구단주 승부수’의 효과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터졌다. 9회까지 밀리던 SSG가 9회말 김강민의 대타 끝내기 스리런 역전 홈런을 엮어냈다. 야구판에서 잔뼈가 굵은 김원형 감독도 “몇 안 되는 대단한 경기”라 평한 엄청난 드라마였다.
폭발은 에너지가 차곡차곡 쌓였을 때 가장 크게 일어난다. SSG 5차전 대역전극에는 구단주 정용진의 한 수가 대폭발의 작약이 됐음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