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교체는 결과론이라고 한다. 결과가 안 좋으면 과정도 인정받기 어렵다. 투수 교체의 당사자라면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에이스 잭 휠러(32)는 지난 6일(이하 한국시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5회까지 안타 2개와 볼넷 1개를 내줬을 뿐 삼진 5개를 잡으며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7.9마일로 시즌 평균보다 2마일이나 더 빠를 만큼 힘이 넘쳤다.
6회 마틴 말도나도를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낸 뒤 제레미 페냐에게 안타를 맞아 1사 1,3루 위기에 몰렸지만 투구수가 70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롭 톰슨 필라델피아 감독이 미운드에 올라와 휠러를 교체했다. 이번 포스트시즌 내내 내일이 없는 야구로 3연속 업셋을 이끈 ‘승부사’ 톰슨 감독의 과감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좌타자 요단 알바레스 타석에 좌투수 호세 알바라도를 투입했지만 결과는 역전 스리런 홈런. 순식간에 1-3으로 스코어가 뒤집혔다. 앞서 이번 월드시리즈 3번의 대결에서 알바라도는 알바레스에 몸에 맞는 볼을 하나 줬지만 내야 뜬공 2개로 잘 막았다. 나름 데이터에 근거한 교체였지만 결과는 대참사였다.
필라델피아가 1-4로 지면서 월드시리즈는 휴스턴의 4승2패 우승으로 끝났다. 5⅓이닝 3피안타 1볼넷 1사구 5탈삼진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된 휠러에게도 허무한 결과.
6회 투수 교체 상황을 두고 경기 후 휠러에게도 질문이 쏟아졌다. ‘MLB.com’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휠러는 “솔직히 당황했다. 그렇게 빨리 교체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더 던지고 싶었다”며 “지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궁극적으로 감독이 결정한 것이다”고 말했다.
휠러의 공을 받은 포수 J.T. 리얼무토는 “패스트볼이 정말 좋았다. 양쪽으로 커맨드도 잘되고, 올해 본 공 중에서 최고였다”며 “알바라도도 최근 얼마나 좋았는지 알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 알바레스부터 다음 3명의 타자 중 2명이 왼손이었다. 톰슨에겐 동전 던지기 같았을 것이다”고 감독의 고민을 헤아렸다.
톰슨 감독은 “휠러의 구위는 여전히 좋았지만 알바레스 상대로는 알바라도가 좋을 것 같아 교체를 했다”며 “휠러는 정말 좋은 투구를 했다. 교체했을 때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승부처였고, 알바라도가 삼진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1-0으로 앞선 1사 1,3루로 삼진이 필요한 상황. 알바라도는 올 시즌 51이닝 81삼진으로 9이닝당 탈삼진이 14.3개에 달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도 알바레스를 2타수 무안타로 막았으니 또 한 번 막아주길 기대했지만 홈런이 나올 줄 몰랐다.
언론에선 투수 교체를 두고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선수들은 톰슨 감독을 옹호하는 분위기. 외야수 카일 슈와버는 “우리는 톰슨이 어떤 결정을 하든 믿는다. 휠러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톰슨이 하는 일을 신뢰한다. 그의 결정을 항상 지지한다”며 “알바라도의 99마일 싱커를 넘긴 알바레스에게 경의를 표한다. 휴스턴에 좋은 타자가 있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홈런을 허용한 알바라도는 “맞는 순간에 홈런인 줄 알았다. 싱커에 무브먼트가 없었다. 무브먼트가 있었다면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며 자책했다.
지난 6월4일 조 지라디 감독 경질과 함께 벤치코치에서 감독대행이 된 톰슨 감독은 팀을 빠르게 수습했다. 65승46패(승률 .586)로 팀을 반등시키며 와일드카드 3위로 포스트시즌에 이끌었다.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2연승으로 제압한 뒤 2년 계약을 맺고 정식 감독으로 선임됐다.
디비전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4승2패,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4승1패로 꺾고 월드시리즈까지 올랐다. 월드시리즈에도 4차전까지 2승2패로 맞섰지만 마지막 2경기에서 휴스턴과 전력 차이를 실감했다. 톰슨 감독은 “우승을 못해 실망스럽지만 선수들이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고개 숙일 필요도 없다. 수많은 고비를 넘은 우리 선수들 모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