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가 확정된 순간. 휴스턴 애스트로스 덕아웃 모두가 두 팔 들어 환호했다. 딱 한 사람, 더스티 베이커(73) 감독만 고개를 숙였다. 펜을 들고 기록지에 마지막 아웃카운트로 우익수 파울플라이를 적었다. 첫 우승의 순간에도 베이커 감독은 자신이 해야 할 것에 집중했다.
베이커 감독이 이끄는 휴스턴은 지난 6일(이하 한국시간) 2022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4-1로 꺾었다. 시리즈 전적 4승2패를 거둔 휴스턴은 2017년 이후 5년 만에 구단 역대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베이커 감독에게는 첫 경험. 선수 시절인 1981년 LA 다저스에서 우승을 한 적이 있지만 감독으로 처음 맛보는 기쁨이었다.
지난 1993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베이커는 시카고 컵스, 신시내티 레즈, 워싱턴 내셔널스를 거쳐 2020년부터 휴스턴을 맡고 있다. 5개 팀을 가을야구로 이끈 메이저리그 역대 유일한 감독으로 통산 3884경기에서 2093승1790패1무(승률 .539)를 기록했다. 2093승은 역대 감독 통산 9위 기록. 25시즌 동안 9번의 지구 우승 포함 12번 포스트시즌에 나갔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었다.
감독이 된 지 30년, 25번째 시즌에 마침내 무관의 한을 풀었다. 만 73세로 북미 4대 프로스포츠 통틀어 역대 최고령 우승 감독 역사까지 썼다. 지난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의 우승을 이끈 잭 맥키언 감독의 72세 기록을 깼다. 포스트시즌 통산 97경기 만에 첫 우승을 해냈는데 2020년 65경기 만에 우승한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을 넘어 최다 기록이기도 하다.
경기 후 베이커 감독은 “그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에 대해 많이 생각했지만 연연하지 않으려 했다. 믿음과 인내심을 가지려 노력했다. 나의 이런 인내심과 성격이 많은 젊은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길 바란다”며 “지금 우승을 해서 매우 행복하지만 안도감은 없다. 순수한 기쁨과 감사한 마음뿐이다. 훌륭한 도시, 조직, 팬과 선수들 덕분이다. 우리 선수들은 이기는 법을 안다. 자신들의 야구에 자신감이 있고, 일관성이 있다”고 선수들에 고마워했다.
휴스턴 선발투수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는 “베이커는 진정한 전설이다. 2020년 그가 왔을 때 우리는 사인 훔치기 스캔들과 코로나로 힘들 때였다. 하지만 베이커가 우리를 안정시켜주는 힘이 됐다. 조금 더 일찍 우승했으면 좋을 텐데 오늘 그는 이렇게 우승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짐 크레인 휴스턴 구단주도 “우리는 경험 많은 감독이 필요했고, 베이커가 그 역할을 아주 잘해줬다. 사인 훔치기 사건은 잊혀지지 않겠지만 이번 우승으로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좋은 팀인지 증명했다”며 “베이커가 우리를 수렁에서 구했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데려가줬다. 베이커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베이커 감독은 지난해 월드시리즈 준우승을 거둔 뒤 휴스턴과 1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1년 단기 계약은 우승으로 이어졌다. 정상에서 아름다운 은퇴 가능성도 있지만 휴스턴 선수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베이커 감독의 재계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크레인 구단주는 다음주 베이커 감독의 거취와 관련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