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1-1이던 3회 말이다. 홈 팀의 타순이 좋다. 2번 전병우가 시작이다. 초구 패스트볼(145㎞)이 가운데 꽂힌다. 가만히 서서 스트라이크 1개를 먹었다. (5일 고척돔, SSG-키움 한국시리즈 4차전)
다음 공이다. 119㎞ 커브가 떨어진다. 안쪽 낮은 코스로 통했다. 괜찮은 브레이크다. 그런데 배트가 돌았다. 완벽한 타이밍이다. 좌익수 옆 2루타다. 숀 모리만도에게 3타석 연속 안타다.
물론 좋은 타격이다. 그걸 전제로 한다. 다만 한가지 따져볼 게 있다. 제대로 구사된 커브다. 그런데 정확하게 반응했다. 몇 가지 이유가 추론된다. ① 변화구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② 요즘 워낙 감이 좋다. 눈에 보여서 나갔다. ③ 커브를 노리고 있었다. ④ 기타 등등.
모두 개연성은 있다. 하지만 계산에 없다면 치기 힘든 공이다. 그런데 이 투구 전까지 커브 구사율은 11.4%(35개 중 4개)였다. 노리기에는 확률이 낮다. 그럼 한가지 개연성이 남는다. ⑤ 알고 쳤다. 즉, 다음 구질을 눈치챘다는 뜻이다.
사인을 훔쳤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다른 방식도 많다. 흔히 쿠세(くせ)라는 일본말로 통한다. 미국 사람은 티핑(tipping)으로 부른다. 투수의 버릇이다. 체크 포인트는 무수하다. 글러브의 ▶각도 ▶위치 ▶벌어짐에서 노출된다. 또 ▶손 ▶어깨 ▶다리의 움직임에서도 식별된다. 심지어 표정에서도 나타난다. 슬라이더 때 혀를 내밀거나(옥타비오 도텔), 스플리터 잡으면서 찡그린다(오타니 쇼헤이).
다시 어제(5일) 고척돔으로 돌아가자. 히어로즈는 3회 몰아치기로 5점을 뽑았다. 전병우-이정후-김태진-이지영-송성문이 집중타를 폭발시켰다. 상대의 커브, 커터(슬라이더), 포심 모두를 탈탈 털었다. 선발 투수는 KO됐다. 4차전의 결정적 장면이다.
모리만도의 기록을 보자. 정규시즌 때는 좋았다. 키움과 2경기에서 12이닝을 막았다. 8피안타, 3실점. ERA 2.25로 준수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는 반대다. 2게임, 4이닝 동안 7점(6자책)을 잃었다. ERA를 따지면 13.50이다.
세심한 시청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이 경기는 KBS TV가 중계했다. 박용택 해설위원이 초반에 이런 얘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아, 저런 공도 골라내는군요. 오늘 키움 타자들이 모리만도의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에 전혀 손이 나오지 않고 있네요.”
지난 7월이다. 그의 영입 당시 SSG의 보도자료다. 이런 내용이 포함됐다. “우수한 제구와 다양한 피칭 레퍼토리로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선발투수로 평가를 받는다. 또한 크로스 스탠스의 투구폼으로 디셉션(투구 시 공을 숨기는) 동작이 뛰어나다.”
그 다음이다. 주목을 끄는 문장이 등장한다. “특히 직구와 변화구 모두 같은 팔회전과 궤도에서 나와 구종 파악이 어렵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굳이? 보도자료에? 너무 친절하고, 자세한 것 아닌가. 보통과는 좀 다르다. 대개는 이런 식이다.
“이닝 소화력이 뛰어나고, 제구력이 안정됐다. 타이밍을 뺏는 투구와 경기 운영 능력 역시 수준급이다.” (KIA 파노니) “선발 경험이 풍부하고, 커맨드가 좋아 제구가 안정적이고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LG 플럿코) “전형적인 선발 유형으로 제구가 좋은 패스트볼과 낙차 큰 커브가 강점이며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 등도 구사한다.” (KT 벤자민)
보도자료에 등장한 ‘구종 파악’. 어쩌면 풀어야 할 숙제였는지 모른다. 의구심을 갖자면 말이다.
2017년 월드시리즈 때도 시끄러웠다. 다저스의 다르빗슈가 3, 7차전서 난타당했다. (3차전 원정, 7차전은 홈 게임.) 나중에 익명의 휴스턴 타자가 이렇게 털어놨다. “우리는 세트 모션에서 공을 잡는 순간 슬라이더를 식별할 수 있었다. 덕분에 괜찮은 게임 플랜이 진행됐다.” 여기에 대한 상대의 반응도 놀랍다. “우리도 알고 있었다. 본인하고 얘기해봤지만, 뜻대로 안됐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
구종 힌트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활용이 별로 안되기도 한다. 아니, 방해된다는 타자도 있다. 폼이나 각도 신경 쓰느라, 정작 타이밍을 놓친다는 얘기다. YES/NO식 접근도 안된다. 수정됐다가 불현듯 나타나기도 한다. 한마디로 참고 사항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극대화되는 경우도 있다. 승부가 좌우될 만큼 말이다. 모든 팀이 전력분석팀을 강화하는 이유다. 특히 히어로즈가 그렇다. 홍원기 감독도 프런트 시절 이 업무를 맡았다. 김창현 수석코치는 전공 분야다. 10년 가까이 종사한 전문가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