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는 경험보다 중요한 게 기세다.”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된 이정후(키움)의 말이다. 준플레이오프에서 KT와 최종 5차전을 치르고 올라온 키움이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정규시즌 2위 LG를 3승1패로 꺾은 것을 두고 언더독의 반란, 이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규시즌에 양 팀의 승차는 7경기였고, 상대 전적에서도 LG가 10승6패 우위를 점했다.
1차전을 잡은 LG가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2차전부터 분위기를 탄 키움이 순식간에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 업셋을 연출했다. 경기 후 류지현 LG 감독은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잘 치고 싶고,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크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며 “(순위상) 위에서 시즌을 끝낸 팀들은 ‘지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패인을 돌아봤다.
패장의 변명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적어도 KBO리그 플레이오프에선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 1989년 단일리그제로 현행 ‘계단식’ 포스트시즌이 시작된 이후 올해까지 총 32번의 플레이오프 시리즈(1999~2000년 양대리그 시절 제외)가 있었는데 그 중 2위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게 16번으로 확률상 50%밖에 되지 않는다. 객관적인 전력이나 체력적 우위를 감안하면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2위팀의 승산이 훨씬 높아야 정상인데 확률은 그렇지 않다.
특히 2019년 SK(키움에 3패), 2020년 KT(두산에 1승3패), 2021년 삼성(두산에 2패)에 이어 올해 LG까지 최근 4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서 2위팀들이 줄줄이 업셋을 당하고 있다. 2019년 SK는 시즌 내내 지켜온 1위 자리를 시즌 최종전에 빼앗긴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고, 2020년 KT는 창단 첫 가을야구에서 경험 부족을 드러냈다. 2021년 삼성도 타이브레이커 게임에서 패하며 아깝게 정규시즌 우승을 놓친 뒤 코로나로 인한 일정 변경 탓에 3전2선승제 짧은 시리즈가 된 게 아쉬웠다.
7전4선승제 한국시리즈에 비해 플레이오프는 5전3선승제로 비교적 짧은 시리즈라 변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단기전은 팀 전력만큼이나 선수들의 기세, 흐름, 분위기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심리적으로 져도 본전인 3~4위팀이 준플레이오프 승리의 기운을 안고 플레이오프에서 2위팀을 몰아붙이는 것이 가능하다. 준플레이오프만 치르고 올라오면 체력적인 문제도 크지 않다.
지금까지 16번의 플레이오프 업셋 중 12번이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온 팀이 플레이오프 1차전을 잡고 기선 제압한 뒤 업셋을 일으켰다. 1차전을 승리하고 업셋을 당한 2위팀은 1996년 쌍방울(현대에 2승3패), 2001년 현대(두산에 1승3패), 2006년 현대(한화에 1승3패)에 이어 올해 LG가 역대 4번째.
역대로 정규시즌 2위팀이 한국시리즈에 우승한 것도 1989년 해태, 2018년 SK로 두 번밖에 없다. 오히려 3위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사례가 3번(1992년 롯데, 2001년 두산, 2015년 두산)으로 2위팀보다 우승 횟수가 많다. 플레이오프 직행 메리트가 그렇게 크지 않다. 확률상 2위팀의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는 이변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 2002년 이후 20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컸던 LG의 충격은 도저히 감출 수가 없다. 역대 업셋을 당한 2위팀 중에서 올해 LG(.613)보다 승률이 높은 팀은 2019년 SK(.615)가 유일하다. LG가 플레이오프에서 업셋을 당한 것은 1995년(롯데에 2승4패), 2013년(두산에 1승3패)에 이어 구단 역대 3번째로 리그 통틀어 해태-KIA(4회) 다음으로 많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