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먼저 감독 교체 카드를 꺼낸 팀이다. 지난 6월4일(이하 한국시간) 조 지라디 감독을 전격 경질하며 롭 톰슨(59) 벤치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겼다.
당시까지 필라델피아는 22승29패에 그치며 내셔널리그(NL) 동부지구 3위로 고전 중이었다. 오프시즌에 FA 강타자 닉 카스테야노스와 카일 슈와버를 영입하면서 우승 전력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기대만큼 성적이 나지 않자 칼을 빼들었다. 2009년 뉴욕 양키스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지라디 감독도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필라델피아를 살리지 못하고 물러났다.
51경기 만에 감독을 바꾼 건 남은 시즌을 위한 결정이었다. 당시 데이브 돔브로스키 필라델피아 사장은 “우리 전력을 발휘하지 못해 답답했다. 모두가 책임을 나눠야 하지만 변화가 필요했다. 감독을 바꾸는 게 우리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봤다. 톰슨 대행이 우리 팀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적임자라고 생각한다”며 감독 경험은 없지만 2008년 양키스 코치를 시작으로 빅리그 지도자 커리어를 쌓은 뒤 2018년부터 5년째 팀에 몸담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톰슨 대행에게 반전을 기대했다.
돔브로스키 사장의 말은 머지않아 현실로 이뤄졌다. 톰슨 감독대행 체제에서 시작부터 8연승을 달리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필라델피아는 5할 승률을 회복한 뒤 87승75패(.537)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101승씩 거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뉴욕 메츠에 밀려 NL 동부지구 3위 순위는 그대로였지만 와일드카드 3위로 포스트시즌 막차 티켓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지휘봉을 잡은 뒤 65승46패(.586)로 대반전을 일으킨 톰슨 대행은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2연승으로 제압한 뒤 정식 감독으로 선임됐다. 2024년까지 2년 계약을 맺으며 성과를 인정받은 톰슨 감독은 디비전시리즈에서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3승1패로 승리했다.
여세를 몰아 챔피언십시리즈에서도 샌디에이고를 4승1패로 누르며 팀을 13년 만에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 지구 3위팀이 월드시리즈에 오른 건 역대 최초의 일. 시즌 도중 감독을 교체한 팀이 월드시리즈에 오른 것은 역대 6번째였다. 톰슨 감독은 캐나다 국적의 감독으로는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오르게 됐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톰슨 감독은 대행을 맡은 뒤 4개월 만의 성과에 대해 “정말 놀랍다. 그것을 설명할 다른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시작이 좋지 않았지만 우리 구성원 모두가 어려움을 극복했다.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쁘다”며 6월 이후 반등에 대해 “많은 요소들이 결합됐다. 5월보다 일정이 쉬웠고, 선수들이 건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젊은 선수들도 성장했다. 트리플A 리하이벨리, 더블A 레딩 등 마이너리그에서도 좋은 선수들을 잘 준비시켜줬고, 그들이 빅리그에 올라와 기존 선수들의 부상 공백을 메워줬다”고 공을 돌렸다.
5차전에서 8회 역전 결승 투런 홈런을 폭발하며 챔피언십시리즈 MVP에 선정된 필라델피아 간판 타자 브라이스 하퍼는 “톰슨 감독은 팀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능력을 갖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선수들을 믿는다. 이런 감독과 함께하면 더 나은 선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그의 리더십을 치켜세웠다.
필라델피아는 오는 29일부터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7전4선승제 월드시리즈를 갖는다. 만약 필라델피아가 우승을 차지하면 톰슨 감독은 지난 1978년 양키스 밥 레먼 감독,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 잭 맥키언 감독에 이어 역대 3번째로 시즌 중 지휘봉을 잡아 우승하는 감독이 된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