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인대가 온전치 않은데 전력질주를 하고, 송구가 힘들 정도로 어깨가 아픈데 출전을 자청한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소중한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일까.
KT는 올 시즌 내내 부상 악몽에 시달렸다. 개막 직전 간판타자 강백호의 발가락 골절을 시작으로 에이스 윌리엄 쿠에바스가 팔꿈치, 새 외인타자 헨리 라모스가 발가락을 다쳐 나란히 이탈했고, 다시 강백호가 여름 햄스트링 부상으로 재활을 진행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순위싸움이 한창인 9월 초 홈런왕 박병호마저 발목 인대가 파열되며 타선의 구심점을 잃었다. 정규시즌 4위로 3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한 게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KT는 포스트시즌에 돌입해서도 부상 악재와 마주해야 했다. 팀 내 유일한 3할타자이자 출루율 1위 조용호가 준플레이오프 1차전 전날 훈련 도중 허리를 다친 것. 이강철 감독은 당시 “준플레이오프는 물론 플레이오프에 가도 상태를 봐야한다”라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여기에 주전 유격수 심우준은 1차전 이후 어깨 담 증세를 호소하며 2차전 출전이 불발됐다.
KT는 부상자가 속출한 가운데서도 적지에서 1승 1패 목표를 달성했지만 반드시 잡아야하는 3차전을 내주며 1패면 가을이 끝나는 벼랑 끝에 몰렸다. 그리고 4차전 또한 이들의 몸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며 어려운 경기가 예상됐다. 박병호는 여전히 전력질주가 불가능했고, 심우준은 어깨가 저렸으며, 조용호는 타격훈련을 실시했지만 주루와 수비는 사실상 어려웠다.
그러나 KT는 2연패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아파도 뛰고 또 뛰었다. 3차전의 가장 큰 투혼은 4-5로 뒤진 7회말 공격 때 나왔다. 선두로 나선 박병호가 좌익선상 쪽으로 향하는 장타성 타구를 날린 뒤 2루를 밟은 것이다. 건강한 박병호였다면 2루까지 여유롭게 도달했겠지만 그는 인대 파열 여파로 전력질주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득점권에 위치하기 위해 발목 통증을 참고 2루까지 뛰었고,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이는 황재균과 송민섭의 쐐기 적시타를 뒷받침한 귀중한 2루타였다.
박병호는 경기 후 “발목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라며 “오늘이 최근 들어 가장 빨리 뛰었다. 아마 7회 2루타 때 말렸어도 뛰었을 것 같다. 점수가 필요한데 다리 때문에 멈춰서 2루에 못가면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것 같아 열심히 한 번 뛰어봤다. 2루에 도착해서 다리 상태가 나쁘지 않아 다행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래 벤치에서는 대주자로 교체하려고 했는데 내가 괜찮다고 했다. 다음 타석이 또 돌아올 것 같아 내가 계속 한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박병호뿐만이 아니다. 심우준은 경기에 앞서 어깨에 저림 증세를 느꼈지만 출전을 자청, 6회 승기를 가져오는 1타점 2루타를 쳤고, 조용호는 시리즈 출전이 어렵다는 전망을 깨고 대타로 출전해 침착하게 볼넷을 골라냈다. 그밖에 다른 선수들도 11일 정규시즌 최종전까지 치열한 순위싸움을 펼친 탓에 체력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이지만 내색 없이 팀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있다.
박병호는 “한 시즌 동안 가을야구 진출을 목표로 한 뒤 큰 그림을 그리면서 뛰어왔는데 부상으로 경기에 못 나가면 너무나 아쉽다”라며 “조용호도 복귀를 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기 때문에 오늘 대타로 나올 수 있었다. 다들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조금씩 더 힘을 내는 것 같다”라고 투혼의 비결을 전했다.
하루 휴식 후 22일 키움의 홈인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시리즈 최종 5차전을 치르는 KT. 선수단의 부상 투혼이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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