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최고참 투수 정우람(37)은 베테랑의 표본이다. 뛰어난 야구 실력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생활과 넉넉한 마음씨로 후배들의 귀감이 된다. 지난 6일 퓨처스리그 일정을 마친 2군 선수단 전체에 사비로 한우를 쏘기도 했다.
올해 한화 팀 내 최다승을 거둔 투수 장민재는 “팀에 왜 야구 잘하는 선배가 있어야 하는지 절실히 느꼈다. 우람이형이 1군에 돌아오신 뒤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셨다”며 고마워했다. 또 다른 후배 박상원은 “야구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인생을 가르쳐주신 선배”라고 표현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도 “리빌딩은 젊은 선수들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연차가 쌓인 베테랑 들도 필요하다. 어린 선수들을 멘토링하며 귀감이 되는 선수가 있어야 하는데 정우람이 우리에겐 그런 선수”라고 칭찬했다.
한화는 올해 3년 연속 꼴찌에 팀 역대 최다 96패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가뜩이나 전력이 약한데 경험 부족한 젊은 선수들이 거듭된 패배에 어찌할 바 모른 채 우왕좌왕했다. 1군에 베테랑 선수가 많지 않다 보니 팀이 흔들리면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나갔다. 곳곳에서 느슨하고 해이한 모습들도 나왔다. 정우람의 빈자리는 불펜 약화뿐만 아니라 선수단 분위기를 잡아줄 기둥의 부재로 이어졌다.
서산 재활군과 퓨처스 팀에서 100일 넘게 몸을 만든 뒤 9월 첫 날부터 1군에 돌아온 정우람은 후배들을 향한 잔소리가 부쩍 늘었다. 그는 “팀이 리빌딩을 선언하고 2년간 여러 가지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 역시 팀의 변화에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어린 선수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할 수 있게 격려나 응원을 많이 했다”며 “서산에 있는 동안 팀의 방향 안에서 최고참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결론은 ‘악역’ 자처였다. 정우람은 “너무 몰아붙여서도 안 되지만 때로는 다그칠 때도 필요하다. ‘내가 나서는 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팀이 바닥인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후배들에게 하나라도 더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주며 뭐라 하기도 했다. 악역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지금 후배들이 나중에 선배가 됐을 때를 위해서라도 해야 한다. 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만 38세가 되는 정우람은 선수 생활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자기 것만 하기에도 벅찬 시기이지만 정우람은 연습 과정부터 경기 중에도 선수들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놓치는 게 어떤 부분인지 유심히 보며 한마디라도 더 건네고 있다.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정신적 피로가 만만치 않지만 정우람은 “내 야구만 신경 쓸 수 없다. 우리 팀이 잘 되길 바라는 사람 중 하나로서 무조건 해야 할 일이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6년 FA로 한화에 온 정우람은 7년의 세월만큼 팀에 대한 애정도 커졌다.
고참의 한마디에 힘이 더 실리기 위해선 야구도 잘해야 한다. 주사 치료 금지로 규정이 바뀐 탓에 재활이 길어진 정우람은 1군 투수가 된 2005년 이후 가장 적은 23경기 18⅓이닝 투구에 그쳤다. 하지만 9월 1군 복귀 후 15경기에서 홀드 7개를 거두며 평균자책점 1.59로 반등했다. 140km대 구속을 회복했고, 11⅓이닝 동안 삼진도 13개를 잡았다.
정우람은 “시즌의 반 이상을 쉬었는데 아쉽다는 표현도 할 수 없다. 부족했고 부끄럽다”며 자책한 뒤 “재활 코치님들이 오랜 기간 도와주셨고, 1군에 가서 경기력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있었다. 선배로서 나부터 잘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후배들도 더 많이 배울 게 있을 것이다”며 책임감을 보였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