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노 아키히로(54) 한신 타이거즈 감독은 지난 2월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올 시즌까지 감독을 하고 그만두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선수의 예고 은퇴는 있어도 감독이 시즌 전 사임 의사를 미리 밝힌 건 매우 드문 일. 지난 2018년 시즌 후 3년 계약을 한 야노 감독은 1년 재계약에 성공한 뒤 벼랑 끝 각오로 올 시즌을 임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쉽게 됐다.
한신은 올해 개막 9연패로 시작했다. 구단 최초이자 센트럴리그 역대 최다 불명예 기록. 첫 승을 거둔 뒤에도 무승부 한 번 포함 5연패를 당하며 1승15패1무로 추락했다. 역대 최소 23경기 만에 5개 팀에 스윕패를 허용하는 굴욕도 맛봤다. 분노한 한신팬들은 야노 감독을 즉시 경질하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구단주인 후지와라 다카오키 한신 전철 회장의 신임 속에 야노 감독은 시즌 끝까지 팀을 지휘했다. 4월 한 달간 극심한 부진을 딛고 센트럴리그 3위(68승71패4무)로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뒷심을 보였다. 클리이막스 시리즈(CS)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를 2승1패로 꺾으며 파이널 스테이지에 올랐지만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3연패하며 시리즈 전적 4전 전패로 일본시리즈 진출은 좌절됐다.
14일 야쿠르트와의 CS 파이널 스테이지 3차전 3-6 역전패가 야노 감독의 마지막 경기가 됐다. 일찌감치 후임 감독으로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내정됐고, 15일 공식 발표가 이뤄졌다. 야노 감독은 이날 후지와라 구단주에게 시즌 최종 보고를 마친 뒤 퇴임 회견을 가졌다.
‘스포츠호치’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야노 감독은 눈물을 훔치며 지난 4년간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리그 우승도, 일본시리즈 우승도 하지 못해 아쉽다. 어제 경기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속상했다. 이 선수들과 야구를 더 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고 돌아봤다.
시즌 전 퇴임 선언에 대해선 조금은 후회하는 모습. 야노 감독은 “나 스스로 굉장히 고민했는데 선수들에게 거짓말을 하기 싫었다. 정직하고 싶었다. 내게는 도전이었고, 팀에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퇴임을 발표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개막 초반 팀에 걸림돌이 됐다. 솔직히 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든다”며 자책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에 3위를 했다. 지난 4년간 다 같이 만들어온 팀의 끈기를 보여줬다. 끝까지 싸워준 선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며 선수, 코치 시절 포함 20년 동안 몸담은 한신 구단에 대해 “내 인생을 바꿔줬다. 설마 감독까지 시켜줄 줄은 몰랐다. 굉장히 힘들고, 잘 안 된 부분도 많았지만 일본의 최고 응원을 보내주신 타이거즈 팬들과 20년이나 함께할 수 있어 감사했다. 내년부터 타이거즈의 팬으로 응원하면서 나 자신도 도전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다”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지난 1991년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데뷔한 포수 출신 야노 감독은 1998년 한신으로 트레이드된 뒤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2003년, 2005년 두 차례 한신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2010년을 끝으로 선수 은퇴한 뒤 방송 해설과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를 거쳐 2016년 한신에 돌아왔다. 1군 작전 겸 배터리코치와 2군 감독을 거쳐 사령탑에 올랐다. 2019년 3위, 2020~2021년 2위, 올해 3위로 4년 연속 A클래스에 들었지만 리그 우승 숙원은 풀지 못했다. 한신의 마지막 우승은 2005년으로 당시 사령탑이었던 노장 오카다 감독이 제자 야노 감독의 후임으로 15년 만에 한신에 복귀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