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는 어떻게 자신을 향한 편견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승엽 KBO 홍보대사가 KBO리그 구단의 코치가 아닌 감독으로 현장 복귀를 원한다는 소문이 파다할 때였다. 2017년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한 뒤 방송 해설위원과 홍보대사 활동을 했다. 최근에는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등 현장 일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승엽이라는 이름의 명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지도자 경험 자체가 전무했기에 다소 무리한 욕심이라는 야구계 안팎의 의견이 당연히 뒤따랐다. 한 야구인은 “이승엽 홍보대사가 감독 자리를 엄청 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현장 코치 경험도 없지 않나, 바로 감독을 한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라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아울러 이승엽이라는 인물에게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하지만 감독 자리를 원했던 이승엽 홍보대사는 결국 감독 자리에 앉았다. 야구 예능 ‘최강야구’의 최강 몬스터즈의 감독이 아니라 두산 베어스의 사령탑이 됐다. 두산은 14일 보도자료로 이승엽 KBO 홍보대사를 제 11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3년 총액 18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5억 원)의 조건.
두산 구단은 “이승엽 신임감독의 이름값이 아닌 지도자로서의 철학과 비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베테랑과 젊은 선수들의 신구조화를 통해 두산 베어스의 또 다른 도약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선임 이유를 밝혔다.
이승엽 감독의 현역시절 명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대단했다. ‘국민타자’, ‘라이언킹’은 이승엽 감독을 대변하는 수식어였다. 1995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해 통산 1096경기서 타율 3할2리, 467홈런, 1498타점을 기록했다. MVP 5회, 홈런왕 5회, 골든글러브 10회를 수상했다. 통산 홈런 순위도 아직 1위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지바 롯데 마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릭스 버팔로스 등 3팀에서 8년간 활약하며 재팬시리즈 우승을 2차례 경험한 바 있다.
또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금메달 1개(2008년), 동메달 1개(200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1개(2002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3위(2006년) 등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현역 생활의 화려한 커리어를 뒤로하고 감독으로서 백지 상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우려처럼 이승엽 감독은 말 그대로 초짜 사령탑이다. 2017년 은퇴한 뒤 그라운드 외부 활동에 주력했다. 프로 레벨은 물론 아마추어 레벨에서도 지도자 경험이 전무하다. 코치 경험조차 없다. 선수와 지도자의 덕목, 역량, 업무 등은 하늘과 땅 차이다. 지도자를 원하는 선수들은 현역 은퇴 이후 지도자 수업, 해외 코치 연수 등을 받는 건 이제 필수 코스다.
선수 때는 사실상 혼자만 생각해도 됐던 게 지도자가 되면 팀 전체를 생각해야 하고 아울러야 한다. 또한 투수 교체, 대타, 대주자 기용, 작전 등 경기 도중 끊임없이 벌어지는 상황들에 맞는 판단들을 내려야 한다. 야구를 보는 시선, 생각의 방법 등이 완전히 달라진다.
선수 시절의 야구가 하나의 컷이자 챕터였다면, 감독의 야구는 계속 이어지는 시나리오이자 서사다. 상황들이 계속 이어지고 맞물리는 과정 속에서 감독으로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경력 있는 감독들도 아무리 적응해도 쉽지 않은 과정들이다.
이승엽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아우라, 카리스마 등이 있을 수 있다. 지도자로서의 덕망은 하루 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다. 지도자 경험 없는 이승엽 감독을 향한 우려의 시선이 어쩌면 당연한 이유다. 이러한 이승엽 신임 감독의 우려점을 경력있는 코칭스태프들로 채운다면 어느 정도 우려가 상쇄될 수 있고 이승엽 감독의 시행착오도 줄어들 수 있다. 2008년부터 타격코치로 지도자를 시작했고 지난 2017~2019년까지 3년 간 삼성의 사령탑이었었던 김한수 전 감독이 새롭게 꾸려지는 이승엽 사단에 합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터. 또한 과거 베어스 왕조의 초석을 다진 고토 고지 타격 코치도 이승엽 감독을 보좌한다.
이승엽 신임감독은 “현역 시절 야구 팬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지도자가 되어 그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며 "그러던 중 두산베어스에서 손을 내밀어주셨고 고민 끝에 결정했다. 그동안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삼성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리웠던 그라운드를 5년 만에 밟게 됐다. 현역 시절 한국과 일본에서 얻은 경험에다 KBO 기술위원과 해설로 보고 배운 점들을 더해 선수단을 하나로 모을 것"이라며 "화려함보단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팬들에게 감동을 드리는 야구를 펼치겠다"고 덧붙였다.
과연 이승엽 신임감독은 자신을 향한 편견과 우려의 시선을 결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이승엽 신임 감독의 취임식은 오는 18일 잠실구장에서 진행된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