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커브에 접어든 선수에게 52억5000만원을 투자한다고?
지난해 통합우승을 차지한 KT 위즈는 12월 3년 총액 30억원에 KBO리그 대표 4번타자 박병호를 전격 영입했다. 2017년 11월 황재균(4년 88억원) 이후 4년 만에 외부 FA 시장에서 지갑을 열며 2연패를 향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당시 오버페이라는 지적이 뒤따른 게 사실이었다. 계약 규모를 떠나 1986년생 베테랑과의 3년 계약을 향한 의심의 시선도 존재했다. 실제로 박병호는 키움 시절이었던 2020년 타율 2할2푼3리-21홈런에 이어 지난해 타율 2할2푼7리와 함께 간신히 20홈런을 치며 에이징커브라는 물음표가 붙었다. 그러나 KT는 보상금 22억5000만원까지 포함해 총 52억5000만원이라는 통 큰 투자를 단행하며 국민거포를 품에 안았다.
KT 이강철 감독은 스프링캠프서 일찌감치 4번 타순에 박병호의 이름을 써 넣었다. 사령탑만큼은 그가 36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최소 20홈런을 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 감독은 “키움 시절 (박)병호가 나오면 항상 무서웠다. 걸리면 넘어가는 선수다. 우리 팀에 와서도 그런 보이지 않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성범, 최형우와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고 기대를 한껏 드러냈다.
이 감독과 KT 프런트의 안목은 옳았다. 박병호는 한 시즌 20홈런이 아닌 전반기를 채 마치기도 전에 20홈런을 치며 국민거포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6월 21일 수원 NC전에서 홈런을 치며 ‘국민타자’ 이승엽을 넘어 KBO리그 최초 9년 연속 20홈런 고지를 밟았고, 지난해 118경기 동안 친 20홈런을 단 65경기 만에 달성하는 이른바 회춘 타격을 선보였다.
전반기에만 홈런 27개를 몰아친 박병호는 8월 3일 NC전 멀티홈런 이후 34일 동안 침묵하는 등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여기에 9월 10일 키움전에서 주루플레이 도중 발목 인대가 파열되며 한 달 가까이 재활에 매진해야 했다. 그러나 전반기 워낙 많은 홈런을 때려낸 터라 꾸준히 이 부문 1위를 유지했고, 놀라운 회복력과 함께 7일 복귀해 8일 KIA과 10일 NC전에서 대타 연타석 홈런을 치며 3년만의 홈런왕 타이틀 탈환을 자축했다.
박병호는 결국 30억원 계약 첫해 35홈런을 치며 삼성 호세 피렐라(28개)를 제치고 2019년(33홈런) 이후 3년 만에 홈런왕이 됐다.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이 2005년 기록한 최고령(만 35세) 홈런왕 기록을 갈아치웠고, 이승엽(5회)을 넘어 역대 최다인 개인 6번째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최근 수원에서 만난 박병호는 “많은 사람들이 계약 당시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KT에 왔을 때 새로운 마음으로 야구하자고 마음먹었는데 그 마음이 시즌 끝까지 유지가 잘 됐다”라며 “계속 실망스러운 성적을 내다가 다시 한 번 30홈런을 달성해 개인적으로 뿌듯하다. 또 중심타선에서 구단의 믿음에 보답한 것 같아 기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할 수 있다고 손을 내민 KT. 그들의 안목은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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