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제 잘 부탁해”
10월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올해 KBO 리그 마지막 경기, KT 위즈와 LG 트윈스전에 등장한 한 여성 팬의 애교 어린 응원대로 키움 히어로즈가 어부지리로 정규리그 3위에 올랐다. 이종범 LG 퓨처스 감독의 딸이자 키움 이정후(24)의 누이와 LG의 리그 최고 뒷문지기 고우석(24)의 결혼 예정 소식이 알려진 뒤였다. LG가 4-5로 뒤졌던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9회 말에 뒤집은 결과, KT가 KIA 타이거즈와의 와일드 카드전으로 밀려나고 키움이 준플레이오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키움이 비록 ‘남의 손을 빌려’(LG 오지환의 9회 말 끝내기 안타)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하긴 했으나 상대적으로 열악한 구단 환경에도 불구 팀을 상위권으로 이끈 홍원기 감독의 지도력은 제대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TV 중계로 LG와 KT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본 홍원기(49) 감독은 “와일드 카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라며 기꺼운 기색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홍 감독은 “주변 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신 덕분이다. 포스트 시즌에는 역시 4, 5위를 해서는 위로 치고 올라가기 힘들다”면서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을 잔치에서 더욱 힘을 낼 수 있는 동력이 생긴 것이다.
키움은 올 시즌 들어 안우진과 에릭 요키시, 쌍두마차의 강력한 1, 2선발로 버텨내긴 했으나 상대적으로 취약한 불펜과 엷은 선수층으로 팀을 힘들게 운용했다.
홍 감독이 “어린 선수들로 불펜 돌려막기를 했으나 (그런 와중에) 10개 구단 중 최하위인 테이블 세터진에도 이정후가 100타점을 넘긴 것은 대단하다”며 이정후의 공을 우선 거론한 것은 당연하다. ‘키움의 이정후’가 아니라 ‘이정후의 키움’이라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키움은 끈적끈적한 팀이다. 쉽사리 물러나는 법이 없고 쉽게 지지 않는다. 그동안 강정호, 김하성, 박병호 같은 핵심 자원의 유출로 전력 누수가 심했던 팀이지만 올해도 김혜성(23), 김휘집(20) 같은 젊은 선수들이 내야를 굳게 지키고 이적생 김태진(27)과 방출생 김준완(31) 같은 선수들을 그러모아 조직력을 키웠다.
특히 김준완에 대해 홍원기 감독은 ‘소금 같은 구실’을 해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NC에서 방출된 김준완은 스토리가 있는 선수다. 지난해 11월 고흥 마무리 캠프 때 찾아와 테스트를 거쳐 아직 쓸만하다고 판단해 입단시켰다. 타율은 2할도 안 되지만 출루율은 3할이 넘었고 이용규가 다쳤을 때 대체 노릇을 잘 해줬다. 무엇보다 연결을 잘해 이정후가 타점을 많이 올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은 김준완의 공이다”
홍 감독은 내야 수비 핵심인 유격수 자리를 지켜준 김휘집의 가능성도 높이 평가했다.
“김휘집은 2년 차인데 지난해 기대를 많이 했으나 시범경기부터 부담을 가진 것 같다. (그동안) 2군에서 경기를 많이 해 자신감을 찾고 올해 내야에서 버팀목 노릇을 해냈다. 내가 생각하는 유격수는 (타율은) 2할 안 돼도 수비율이 9할 8, 9푼이면 성공적이다. 올해 보여준 그 정도 실력(김휘집의 수비율은 .963)이면 앞으로 강정호, 김하성의 대를 이을 수 있다. 성장 가능성이 무한대다”
홍원기 감독은 당초 와일드카드로 시작할 경우 요키시를 선발로 낼 계획이었으나 일정 여유가 생긴 만큼 안우진으로 바꿀 요량이다.
홍 감독은 안우진에 대해 “8월에 역전패 7번 없었으면 안우진이 20승을 충분했을 것이다. 투수 중 제일 기둥 노릇을 해줬고, 상대 외국인 1선발과의 맞대결에 안 밀린 것이 전반기 2위의 원동력”이라고 굳은 믿음을 보냈다.
키움의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도약은 무엇보다 이정후의 뒤를 얼마만큼 받쳐주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김혜성과 송성문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장타력이 살아난 야시엘 푸이그에게 기대를 건다.
홍 감독은 “(푸이그가) 아직 성에는 안 차지만 후반기에 3할 이상 쳤고, (외부 시각과 달리) 속 썩이지 않고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잘 적응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워낙 큰 선수”라고 농담 섞어 치켜세웠다.
키움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가을야구 한마당에 출석했다. 전력을 탄탄하게 다졌다는 반증이다. 홍원기 호가 어디까지 치고 올라갈지 지켜보는 것도 올해 가을야구의 한 가지 흥밋거리다.
글. 홍윤표 OSEN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