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의 정규시즌 우승에 빼놓을 수 없는 선수 중 한 명이 한화 투수 장민재(32)다. 1위 SSG를 무섭게 추격하던 2위 LG를 장민재가 두 번이나 잡았다. 지난달 18일, 24일 잠실구장에서 LG 상대로 각각 5이닝 무실점, 5.2이닝 무실점 호투로 승리하며 SSG의 1위 확정에 결정적 도움을 줬다. SSG 에이스 김광현도 지난 3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장민재에게 고마워하며 "1월에 밥 한 번 살게"라고 약속했다. 장민재는 "(이)태양이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광현이형이 (LG전) 승리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나도 감사하다고 했다"며 웃었다.
장민재는 올 시즌 32경기에서 126.2이닝을 던지며 7승8패 평균자책점 3.55로 활약했다. 개인 최다 이닝에 최다 승리로 지난 2009년 입단 후 14년차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구원으로 시작했지만 4월 중순 외국인 투수들의 동반 부상으로 대체 선발 기회를 얻은 뒤 로테이션에 그대로 안착했다. 한화의 5월 9연패, 6월 10연패, 7월 원정 17연패, 8월 KIA전 9연패를 모두 끊어낸 '연패 스토퍼'로 위기에서 더 빛을 발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올해 장민재가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올해 그가 보여준 모습은 굉장히 놀랍다. 외국인 투수 4명이 전부 다쳐 힘든 시즌이었는데 장민재가 누구보다 꾸준하게 잘해줬다. 우리 팀 최고 선발이었고, 선물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다"고 각별히 고마워했다. 나아가 수베로 감독은 내년 개막전 선발투수 후보로 "장민재 이름을 빼놓아선 안 된다"고도 말했다.
장민재는 "감독님이 내게 기회를 준 게 선물이다"며 웃은 뒤 "개막전 선발 후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매년 시즌에 들어갈 때마다 내 자리는 없다는 생각으로 해왔다. 내년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발이든 중간이든 롱릴리프든 자리에 관계없이 유니폼을 입고 글러브를 끼고 마운드에 올라가서 공 던지는 것만이 내 목적이다. 어떤 자리보다는 내 목적만 생각하고 올해 부족한 점을 찾아 내년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입단한 장민재는 현재 한화 선수 중 가장 오래 팀에 몸담고 있다. 그 사이 선발과 중간을 넘나들며 마당쇠처럼 활약하다 지난해 4개월 동안 2군에 머물렀다.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않기도 했고, 젊은 선수 위주의 리빌딩 바람에 잊혀지는 듯했다.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2군에서 운동 방법에 변화를 주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올해 반전은 지난해 길었던 2군 생활에서 시작됐고, 시즌 막판 1군 복귀 후 반등 조짐을 보이며 수베로 감독 생각을 바꿨다.
장민재는 "지난해 2군에 오래 있었는데 최원호 퓨처스 감독님부터 박정진, 마일영 코치님이 나를 잘 잡아주셨다. 선발 기회를 계속 주시면서 결과를 떠나 장점인 제구를 살리는 데 도움을 주셨다. 이후 1군에 와선 호세 로사도, 이동걸 코치님이 도와주셨다. 이동걸 코치님은 비시즌 때 운동 방법부터 세세히 알려주셨고, 로사도 코치님은 '넌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선수다. 장점을 살려보자'며 다가와주셨다. 여러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올해 잘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20대 시절부터 장민재는 직구 구속이 140km를 넘지 않는 느린 볼 투수였다. 올해도 직구 평균 구속이 136km밖에 되지 않지만 과감한 몸쪽 승부와 낮게 떨어뜨리는 주무기 포크볼에 타자들이 당했다.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공을 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투수로 인정받았다. 그는 "나이를 먹다 보니 야구를 조금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는 것 같다. 공 빠르고, 구위 좋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는 것을 올 시즌 정말 많이 느끼고 있다"며 "큰 변화는 아니지만 운동량이나 방법을 바꾼 것도 주효했다. 이전에는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 운동하는 성격이었지만 올해는 할 것만 딱 하고 쉬면서 힘을 비축했다"고 돌아봤다.
수베로 감독은 "장민재는 야구장에 매일 일찍 나와 행동으로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오후 6시30분 홈경기 기준으로 매일 오전 10시 반이나 11시 사이 야구장에 출근한다는 장민재는 "집에서 빈둥빈둥 있는 것보다 일찍 나가 도구 정리라도 하는 것이다. 글러브와 스파이크를 정성 들여 닦고, 유니폼도 깨끗하게 정리하며 준비한다. 그렇게 하고 운동을 시작한다. 시즌 내내 그렇게 했는데 나를 위한 시간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장민재는 내년 시즌을 마치면 데뷔 후 처음으로 FA 자격도 얻는다. 내년이면 15년차. 오랜 시간 묵묵한 노력이 큰 결실로 맺을 때가 왔다. 느린 공으로도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롱런 중인 그는 "FA라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냥 제 운명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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