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후계자는 한동희 선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롯데 이대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후계자로 ‘한동희’를 꼽았다. 지난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을 앞두고 취재진과의 기자회견에서도 후계자에 대한 질문에 “한동희 선수가 지금 지금 우리 팀에서는 가장 잘할 거 같다”라면서 또 “1군에 김민수 선수나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가 있다. 그 선수들이 갑자기 좋아질 수도 있다. 잠재력 충분한 선수이니 기대 많이 하고 응원하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한동희를 향해 ‘네가 잘해야 나도 편하게 은퇴할 수 있다’라면서 장난 섞인 후계자의 부담을 짊어지게 하기도 했다. 그만큼 한동희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었다. 또한 지금보다 더 빠르게 성장해서 자신의 뒤를 곧바로 이어주기를 바라는 선배의 노파심이기도 했다. ‘리틀 이대호’, ‘포스트 이대호’의 수식어가 ‘제1의 한동희’가 되기를 바랐다.
한동희는 올해 4월까지만 하더라도 이대호의 은퇴시즌, 진정한 후계자 작위를 이어받는 듯 했다. 4월 한 달 동안 타율 4할2푼7리(89타수 38안타) 7홈런 22타점 OPS 1.249의 성적을 남겼다. 4월 MVP의 영예를 안았다. 한동희 개인은 물론, 롯데와 이대호 입장에서도 ‘드디어 후계자가 나왔다’라는 안도감을 가져도 될 법 했다.
그러나 5월 이후 한동희는 햄스트링 부상이 연달아 찾아오며 컨디션 관리가 힘들었다. 부상이 확실하게 회복되지 않았지만 경기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몸 관리 잘체가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계속 경기에 나서며 공수에서 아쉬운 드러냈다. 4월의 뜨거웠던 기세를 잇지 못했다. 타율 3할9리(456타수 140안타) 14홈런 65타점 OPS .812의 기록으로 마감했다. 홈런과 타점은 지난 두 시즌보다 적었지만 커리어 최고 타율, 최다안타, 최고 OPS 시즌을 만들었다. 4월을 생각하면 모든 지표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수비에서는 19개의 실책을 범했다.
그럼에도 한동희는 이대호의 마지막 은퇴경기에서 ‘후계자’의 면모에 걸맞는 모습을 보였다. 1-2로 뒤지던 2회 좌월 솔로포를 때려냈다. 홈런을 치고 덕아웃으로 돌아온 한동희는 하이파이브 대열의 끝에 기다리고 있던 이대호의 품 속에 안겼다. 이대호가 한동희에게 한 시즌 내내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은퇴식을 앞두고 이대호가 선수단 모두에게 전한 손편지에는 한동희가 자신의 대를 이어주길 바라는 진심이 전해졌다. 이대호는 ‘조카 동희야, 삼촌은 떠나지만 롯데 팬들의 영웅이 되어줘’라고 적었다.
한동희는 경기 후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유독 더 짧게 지나간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같이 그라운드에서 뛰지를 못하기 때문에 정말 저한테는 영광이었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동희 입장에서는 ‘스텝업’을 했어야 할 시즌, 오히려 정체된 활약을 펼쳤다. 이제 내년부터는 한동희를 이끌어 줄, 우상으로 삼았던 선배가 사라진다. 과연 한동희는 이대호가 마음 놓고 떠날 수 있을 활약을 앞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