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땡볕이 내리쬐던 8월 중순이었다. 더위만큼 순위 경쟁도 치열하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인사발령이 났다. 투수 한 명이 출전 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 하루 전만해도 불펜행이 유력하다던 이영하(두산)였다.
당시 김태형 감독의 설명이다. “(권명철) 투수코치와 얘기를 나눴는데, (불펜행 대신) 엔트리에 한번 빠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중간에서 던지든, 선발로 던지든, 본인이 심적으로 안정이 안되는 것 같다.”
그러려니 했다. 워낙 안 좋을 때였다. 그 무렵 4경기에서 3패, ERA 11.17로 난조였다.
하지만 며칠 뒤 다른 사실이 밝혀졌다. 엔트리 제외의 진짜 이유는 재판 때문이었다. 고교시절 문제에 대해 검찰의 기소가 이뤄졌다. 특수폭행, 강요, 공갈 등의 혐의다.
이미 작년부터 논란이 된 사건이다. 이를 피해 호소인이 스포츠 윤리센터에 신고하며 재차 점화됐다. 두산은 기소 사실을 알고 KBO 클린 베이스볼 센터에 신고했다. 아울러 당사자를 현역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KBO프로토콜에 의거한 조치들이다.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출전은 불가능했다. 사실상 시즌 아웃이나 다름없었다. 이로 인해 베어스의 추격 의지는 결정타를 맞았다. 결국 8년만에 한가한 가을이 됐다. 9위, 81패. 창단 후 처음 겪는 숫자들을 만나고 말았다. 왕조의 수모다.
7년전 이맘 때다. 준플레이오프가 4차전에서 끝났다. 3위 두산이 4위 넥센을 3승 1패를 물리쳤다. 바로 다음 날인 10월 15일이다. TV조선 ‘뉴스쇼 판’이 야구판을 뒤집는 소식을 전했다. ‘단독’이라는 타이틀이 걸린 꼭지다. 여성 앵커가 이렇게 문을 연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간판급 선수 3명이 해외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야구 시즌이 끝나면 마카오에서 도박을 했는데, 수 억원을 잃은 선수도 있다고 합니다.”
당시만해도 구체적인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후속 보도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이 사건은 며칠 뒤 시작된 한국시리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페넌트레이스 1위로 여유만만하던 삼성과 류중일 감독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연루된 3명을 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시켜야 했다. 임창용, 윤성환, 안지만이다.
마운드의 핵심이 빠진 1위 팀은 1차전(스코어 9-8)만 간신히 건졌을 뿐이다. 2차전부터 4연패로 대권을 내줬다. 준PO 4차전, PO 5차전. 무려 9게임이나 격전을 치르고 올라온 베어스가 ‘미러클 두산’의 위용을 뽐내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당시 삼성은 천하무적이었다. 5연속 통합 우승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 사건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후 5년간 9-9-6-8-8, 굴욕의 코드를 찍어야 했다. 언제 다시 영광을 되찾을 지 미지수다.
패권을 이어받은 건 두산이다. 7연속 한국시리즈의 위업을 이뤘다. 하지만 올해 쉼표를 찍었다.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학폭 스캔들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신인지명이 또다시 문제된다. 일부 팬의 트럭 시위도 벌어졌다.
왕조를 무너트리는 건 강력한 상대의 등장이 아니다. 엄청난 피홈런이나 결정적인 실책도 아니다. 그건 안에서부터 시작된, 야구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도덕성이라는 ‘하찮은’ 것에서 비롯된다. 동서고금의 여러 사례가 실증한다. 삼성 왕조가 그렇게 사라졌다. 두산 왕조가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이제 비슷한 지점에서 그 고비를 맞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