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손아섭 찾기’라는 올 시즌 최대 과업을 어느 정도 완수를 했다. 확신을 갖고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면에는 설레는 지표들이 있기에 더욱 기대를 할 수 있다. 롯데 고승민(22)은 손아섭 후계자의 면모를 착실히 갖춰나가고 있다.
고승민은 후반기에 1군에 적응하며 최고의 타격감을 선보이고 있다. 후반기 한정, 타격왕 경쟁을 펼치는 이정후(키움), 호세 피렐라(삼성), 심지어 팀 내 최고 타자인 이대호보다도 더 뜨겁다. 후반기 130타석 이상 소화한 선수들 가운데 가장 높은 타율 4할1푼7리(120타수 50안타)를 기록 중이다. 1홈런 15타점 16득점 OPS 1.003의 성적. 풀타임 주전 선수들보다 표본이 적기에 올바른 비교가 힘들 수는 있지만 팬들에게 다가온 임팩트 자체는 남다르다.
시즌 전체 성적도 구단과 팬들이 보기에 모두 흐뭇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렸다. 올해 90경기 출장해 254타석을 소화했고 타율 3할1푼4리(226타수 71안타) 27타점 30득점 25볼넷 43삼진 OPS .823의 성적이다.
롯데는 우익수 자리를 10년 넘게 책임졌던 손아섭이 FA로 이적을 한 뒤 과연 누가 손아섭의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추재현, 신용수, 김재유가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이들은 부진과 부상으로 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결국 시즌 전의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황성빈이 먼저 등장해 1군에 자리를 잡은 뒤 뒤이어 고승민이 따라서 성장했고 이제는 고승민이 ‘포스트 손아섭’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만약 이대로 시즌이 끝난다면 손아섭의 풀타임 1년차 시즌이었던 2008년의 성적, 80경기 250타석 타율 3할3리(218타수 66안타) 3홈런 17타점 31득점 OPS .791 등의 기록을 모두 뛰어넘게 되는 고승민이다.
단순히 성적과 결과만으로 고승민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타구속도와 발사각이라는 데이터를 종합해서 양질의 타구를 판단하는데 고승민은 일단 타구속도라는 하나의 조건은 충족했다. 롯데 R&D팀이 측정한 자료에 의하면 고승민의 올 시즌 전체 타구 속도는 141.7km에 달한다. 리그 최정상급의 타구속도를 기록했다. 그리고 안타가 된 타구만 집계했을 경우, 타구속도는 151.8km까지 상승한다. 강한 손목 힘과 스윙스피드로 빠른 타구를 양산하며 안타 확률을 높이고 있다.
다만, 고승민은 아직까지 땅볼이 더 많은 타자다. 땅볼/뜬공 비율은 1.63(땅볼 70개/뜬공43개)에 불과하다. 아무리 타구속도가 빨라도 공이 뜨지 않으면 타구가 내야에 갇힐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내야를 빠져나가더라도 장타보다는 단타에 그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고승민의 발사각은 7.2도다. 후반기 상승세로 조금이나마 높아진 수치다. 땅볼 타구의 발사각은 -15.2도.
하지만 발사각도 발전할 여지가 있다. 라인드라이브 타구 평균 발사각은 9.5도에 뜬공 타구의 평균 발사각도가 27.3도다. 데이터 상으로 고승민은 뜬공도 하늘 높이 떠다니는 타구가 아닌, 비교적 낮은 탄도로 비행해서 외야수들에게 가는 타구들이라고 볼 수 있다. 140~150km의 타구 속도에 25도 안팎의 발사각은 홈런 등 장타로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타구다. 고승민은 현실 속에서 이상에 점점 다가서고 있다.
고승민은 “발사각이나 타구속도에 딱히 체크 하지는 않는다. 일부러 띄운다고 띄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후반기에는 제 히팅존이 아닌 공은 스윙을 안 하려고 한다. 전반기에 땅볼 비율이 많았고 아쉬운 아웃들이 많았다. 후반기에는 히팅존을 만들어서 내 스윙을 하면서 정확하게 맞히려고 한다. 투수들의 공도 점점 빨라지기 때문에 정확히만 맞혀도 타구들이 잘 빠져나간다”라고 답했다.
고승민이 김현수(LG), 이정후(키움) 유형의 중장거리 좌타자로 성장할지, 아니면 손아섭처럼 컨택 위주의 선수로 성장할 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래리 서튼 감독은 “지금 현재는 고승민이 홈런을 치는 타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다.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훈련을 하는지를 지켜봐야한다. 이렇게 3년 5년 10년을 지켜봐야 가능성과 기대치를 얘기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직 좌투수 상대 성적이 빈약한 점(21타수 4안타, 타율 .190)도 분발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전반기 10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것에 반해 후반기에는 11타수 4안타로 성장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경험이 쌓이자 성장세가 눈에 보인다.
손아섭 이후 10년을 책임질 외야의 미래를 언제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이 컸던 롯데다. 하지만 롯데는 단 1년 만에 적임자를 찾았다. 관건은 ‘꾸준함의 대명사’였던 손아섭만큼 꾸준하게 성장하고 활약할 수 있느냐다. 스스로도 “아직 손아섭 선배님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10년, 15년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야 손아섭 선배님처럼 훌륭한 선수가 될 것 같다. 후반기에 만족하지 않고 두 배로 나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