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울 것 없는 롯데 자이언츠의 5년 연속 5강 탈락이다. 은퇴를 앞둔 ’거인의 심장’ 이대호의 간절했던 바람과 기적은 물거품됐다.
롯데는 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정규시즌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3-9로 패했다. 전날(2일) 두산을 상대로 3-1로 꺾었지만 5위 KIA가 한화를 10-1로 승리, 트래직넘버는 1로 줄었다. 그리고 이날 경기마저 패하며 모든 트래직넘버가 소멸됐다. 롯데는 잔여경기 전승을 하더라도 5위 KIA를 넘어설 수 없게 됐다. 2018년부터 5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는 좌절을 맛봤다.
올 시즌 롯데는 역대급 출발을 선보였다. 개막 10연승을 했던 SSG 랜더스의 폭발적인 출발에 가려졌지만 4월 한 달 동안 14승9패1무 승률 .609의 성적을 남겼다. 2012년 이후 첫 2위의 성적이었다. 그만큼 롯데의 4월은 뜨거웠고 찬란했으며 눈부셨다. 래리 서튼 감독은 ‘위닝 멘탈리티’와 ‘원 팀’을 강조하면서 4월 한 달의 상승세에 고무됐다. “한국시리즈를 목표로 할 것”이라는 원대한 포부에 힘이 실리는 듯했다.
하지만 너무 일찍 폭죽을 터뜨렸다. 4월 한 달의 상승세를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화자찬해서도 안됐다. 6개월의 정규시즌 중 고작 한 달이었다. 모두가 환희에 차 있었지만 추락의 신호를 간과했다.
투수 파트에서 지속적으로 엇박자가 났다. 에이스 찰리 반즈의 4일 휴식 로테이션을 고집하면서 체력이 빠르게 방전됐다. 필승조들의 남용으로 시즌 초반부터 과부하 징조가 보였다. 나균안, 김도규 등 나름 쏠쏠한 역할을 하던 불펜들은 보직을 잃은 채 방황했다. 전반기 내내 투수진 보직이 불명확했다. 야수진에서도 5월부터 줄줄이 부상자가 속출했다. 정훈, 한동희, 전준우, 이학주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졌다. 부상 이후에도 적절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4월 맹타로 월간 MVP를 차지한 한동희는 두 차례 연달아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고 이후 반쪽짜리 몸 상태로 경기를 치렀다. 결국 시즌 내내 4월의 컨디션을 되찾지 못했다.
또한 반즈만 제 몫을 했을 뿐 투수 글렌 스파크맨, 타자 DJ 피터스는 낙제 수준의 성적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일찌감치 짐을 싸고 돌아갔어야 했던 이들이 계속 자리를 차지하자 팀은 삐걱거렸다.
이러한 위기들이 선수단을 잠식시켰다. 서튼 감독의 위기 관리 능력도 0점 수준이었다. 결국 5월부터 추락을 거듭했다. 마치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하위권으로 되돌아갔다. 결국 4월 승패마진 +5를 기록하고도 이를 순식간에 잃었다. 5월 9승17패, 6월 9승12패 2무를 마크했다. 그나마 7월 전반기 마지막 12경기에서 6승6패로 5할 승률을 기록했지만 4월 2위의 성적은 전반기가 끝났을 때 38승44패 3무, 6위까지 떨어졌다.
봄날의 롯데는 플레이오프 이상의 단계를 노렸다. 그러나 5위가 현실적인 목표가 됐다. 후반기 첫 단추를 제대로 꿰어내지 못한 것도 중요 포인트였다. 전반기 막판 4연승을 기록했고 5위 KIA와 승차를 4경기까지 줄였다. 그리고 후반기 첫 3연전 상대팀이 공교롭게도 KIA였다. 홈에서 우세 시리즈를 가져온다면 향후 순위 판도가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롯데는 KIA와의 후반기 첫 3연전에서 허무하게 스윕패를 당했다. 무엇보다 이 3연전의 마지막 경기였던 7월24일에 롯데는 0-23이라는 KBO 역대 최다 점수차 패배의 굴욕까지 맛봤다.
롯데는 후반기 접어들면서 스파크맨을 댄 스트레일리로, 피터스를 잭 렉스로 교체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이들이 합류한 시점이 늦었다. 외국인 선수 교체 시기를 놓쳤다. 스트레일리가 합류 이후 10경기 4승2패 평균자책점 2.20으로 호투했고 렉스가 타율 3할4푼3리 8홈런 34타점 OPS .937로 맹활약했다. 대체 외국인 선수로는 더할나위 없는 특급 성적이었다. 하지만 뒤늦은 분발이 팀 성적까지 바꿔놓지는 못했다. 8월 한 달 간 13승11패로 다시 월간 5할 승률에 복귀했지만 이미 너무 많이 뒤쳐진 상태였다.
한때 5강 경쟁의 가장 강력한 도전자였던 롯데였다. 그러나 주춤했고 그 사이 NC와 삼성이 도약했다. 점점 도전자의 위용이 사라졌다. KIA가 9월 중순 이후 9연패 수렁에 빠지면서 내심 희망이 다시 차 올랐지만 결국 희망고문에 그쳤다.
성민규 단장 부임 이후 3시즌 째를 맞이했고 서튼 감독의 첫 풀타임 시즌이었다. 무엇보다 롯데가 정한 방향성을 이어가기 위해 온전한 프로세스 체제를 갖춘 뒤 첫 시즌이었다. 그러나 순위, 승률 모두 올해가 가장 낮았다.
사실 올해 롯데는 프랜차이즈 스타 이대호의 은퇴라는 엄청난 동기부여가 있었다. 이대호가 은퇴를 예고한 상황에서 똘똘뭉쳐 함께 가을야구에 가보자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 이대호는 자신의 마지막 시즌과 롯데에서의 우승 반지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 구슬땀을 흘렸다.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우승을 차지했지만 롯데에서의 우승만큼 기쁜 것은 없을 것이라고 누누이 말해왔던 그다.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이대호는 은퇴 시즌에도 롯데 최고의 타자로 군림하며 팀을 진두지휘했다. 타석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로 선수단을 독려했다. 라커룸에서도 후배들을 향해서 가을야구에 대한 열망을 끊임없이 드러냈다. 희박한 가능성을 가진 시점에서도 “나는 아직 5강을 포기하지 않았다”라는 말로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나 결국 롯데에서 우승반지, 마지막 가을야구의 꿈은 물거품 됐다.
이날 역시도 이대호는 0-3으로 끌려가던 3회 땅볼로 1타점, 1-4로 격차가 벌어진 5회 추격의 투런포를 쏘아 올리면서 은퇴 시즌 100타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이대호의 바람을 이루기에는 롯데라는 팀의 전력, 그리고 벤치의 용병술 모두가 부족했다. 아울러 결정적인 실책과 주루사가 나오면서 세밀함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재확인하며 가을야구의 자격의 없다는 것을 알렸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