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최초의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뤄낸 두산 베어스 왕조가 창단 첫 9위 수모와 함께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19년 베어스맨은 참담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후배들을 향해 “암흑기는 짧아야 한다”라는 당부를 남겼다.
두산은 지난 2일 사직 롯데전에서 1-3으로 패하며 정규시즌 9위를 확정지었다. 남은 5경기서 전승을 거둬도 공동 7위 삼성, 롯데와 순위를 바꾸지 못한다. 1990년, 2003년 7위, 1991년, 1996년 8위를 넘는 창단 최하위 수모다. 여기에 지난달 29일 포스트시즌 트래닉넘버가 소멸되며 2014년(6위) 이후 8년 만에 가을야구를 TV로 보는 처지가 됐다. 2015년부터 작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은 과거의 영광이 됐다.
2015년 첫 출범한 김태형호는 첫해부터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며 새로운 왕조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2016년 한 발 더 나아가 통합우승을 차지했고, 2017년 정규시즌 2위, 2018년 1위에 이어 2019년 다시 한 번 통합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2020년 3위를 거쳐 작년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는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두산은 2015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꿈의 무대인 한국시리즈에 출석했다.
김 감독은 별다른 FA 보강 없이 지금의 위닝팀 두산을 만들었다. 오히려 연례행사와 같은 전력 유출에도 특유의 육성 능력을 발휘해 매년 최고의 무대를 밟았다. 선물 받은 FA는 부임 첫해 장원준이 유일하며, 이후 김현수, 민병헌, 양의지, 최주환, 오재일, 이용찬, 박건우 등 주축 선수들이 연이어 팀을 떠나는 사태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을 대체할 백업 자원들을 매 년 키워내며 왕조를 줄곧 유지했다.
왕조의 쇠퇴가 조금씩 눈에 보였던 작년 시즌은 보상선수와 트레이드가 빛을 발휘했다. 시즌에 앞서 주전 1루수 오재일과 2루수 최주환이라는 걸출한 스타 2명이 한꺼번에 이탈하며 힘든 시즌이 예상됐지만 트레이드로 합류한 양석환, 보상선수 강승호, 박계범 등이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공백을 메웠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는 새 역사를 쓴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주전들의 노쇠화와 잇따른 전력 유출의 한계에 부딪히며 왕조의 명맥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약화된 전력으로 시즌 초반 2위 돌풍을 일으켰고, 8월 중순까지 줄곧 6위를 유지하며 미라클을 향한 희망을 키웠지만 8월 17일 8위 추락을 시작으로 더 이상 반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올해는 방출선수, 보상선수, 비싼 연봉에 잔류한 FA 고액 연봉자들이 공교롭게도 집단 슬럼프에 빠지며 이 같은 처참한 결과가 초래됐다.
8년 만에 가을 휴식을 얻은 선수들의 마음은 어떨까. 19년 베어스맨인 김재호는 “어색하다. 매년 다른 팀보다 많으면 20경기를 더 했는데 올해는 정규시즌만 하고 끝난다니 낯설다”라고 말했다. 두산에게 작년까지 이맘때는 치열한 순위싸움을 펼치거나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이제 왕조의 주역들이 노쇠화와 은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왕조를 이끌 신예들이 얼마 전부터 그라운드에 나와 경험을 축적 중이다. 김재호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베어스를 만들어가는 시작 단계라고 본다. 많은 선수들이 변했고, 위치도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는 젊은 선수들이 우리 팀 컬러를 잘 이해하고, 잘 이끌어가야 한다. 중요한 첫 걸음 단계다”라고 바라봤다.
향후 또 다른 왕조를 구축해야할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재호는 “우리가 언제까지 계속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삼성이 그랬듯 긴 시간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다시 포스트시즌에 갈 수 있는 팀이 돼야 한다. 그럴 수 있도록 선수들이 책임감을 갖고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라는 당부의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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