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의 역대 최고 외국인 타자를 꼽자면 단연 펠릭스 호세(57)가 처음 언급된다.
1999년, 만 34세의 나이에 롯데 유니폼을 입고 처음 한국 무대에 등장해 132경기 타율 3할2푼7리 151안타 36홈런 122타점 OPS 1.061의 성적을 찍었다. 이 해 삼성과의 기적과 같은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승리로 이끈 뒤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다.
이후 호세는 띄엄띄엄 한국에 등장했다. 그럼에도 잠깐의 임팩트는 매번 놀라왔다. 2001년에는 타율 3할3푼5리 36홈런 102타점 OPS 1.198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썼다. 특히 127개의 볼넷을 얻어냈고 고의4구만 28개를 기록했다. 역대 한 시즌 최다 볼넷 기록은 21년 째 호세가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불혹이 넘은 2006년 다시 한국무대에 와서도 여전한 생산력과 경쟁력을 보여줬다. 타율은 2할7푼7리로 떨어졌지만 22홈런 78타점 84볼넷 OPS .886의 기록으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호세는 롯데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손색없는 기록을 남겼다. 야구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타격 지표의 종합적인 생산성을 가리키는 지표인 wRC+(조정 득점 생산력) 부문에서 단일 시즌 역대 1위는 2001년 시즌 호세의 199.3이었다. 이대호보다 더 뛰어났다. 외국인 선수로 범위를 좁히면 상위 3명이 모두 호세다. 2001년의 호세, 1999년의 호세가 164.4를 기록했고 2006년의 호세가 163을 기록했다. 그만큼 호세의 타격 생산력은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하기 힘들었다.
아직 풀시즌을 치르지 않았지만 이 호세의 생산력에 버금가는 ‘단기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가 올해 후반기부터 합류한 잭 렉스(29)다. 234타석을 소화한 현재, 렉스의 wRC+는 162로 2006년의 호세에 버금간다. 200타석 기준으로 삼았기에 풀타임 시즌 검증을 하지 못했지만 렉스는 단기간에 ‘티-렉스’급 포식자의 면모를 과시하며 한국 리그에 연착륙했다.
시즌 막바지로 향하는 현재, 52경기 타율 3할3푼8리(204타수 69안타) 8홈런 34타점 31도루 OPS .929의 성적을 남기고 있다. 스탯티즈 기준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는 2.27, KBO 공식 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 기준 WAR도 2.47에 달한다. 절반도 안되는 시즌 동안 렉스의 전임자였던 DJ 피터스(스탯티즈 1.18 / 스포츠투아이 1.33)의 2배 가량 팀에 더 도움이 됐다.
‘렉스의 합류, 외국인 선수 교체가 조금이나마 더 빨리 이뤄졌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이 계속됐다. 그만큼 렉스의 적응력과 임팩트는 롯데의 올 시즌 후반기 운명, 가을야구 진출 여부까지도 바꿔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미국에서 활약할 동안 평가는 컨택과 선구안, 외야 수비력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오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기회가 없었다’라는 것을 시위라도 하듯, 자신에 대한 편견을 모두 벗어던졌다. 타율에서 보듯 컨택 능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23볼넷/40삼진이라는 볼넷/삼진 비율은 크게 문제될 게 없다. 그리고 중견수 수비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외야 전포지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키며 황성빈, 고승민, 전준우와 함께 유기적으로 외야를 꾸릴 수 있었다. 렉스는 짧은 시간 동안 팀의 해결사에 윤할유 역할까지 하면서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올해 렉스의 연봉은 31만3000달러. 7월 말에 영입됐고 이적료 지출도 있었기에 현재 활약상에 비해 적은 연봉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년에는 2년차로 연봉 상한제의 부담이 없다.
이제는 롯데가 ‘을’의 입장에서 렉스와 협상을 해야 한다. 다만, 외국인 선수 연봉 샐러리캡까지 고려해야 한다. 찰리 반즈, 댄 스트레일리의 투수 외국인 원투펀치는 모두 100만 달러 이상급의 가치가 있는 선수들인데 렉스 역시 그에 못지 않다.
여전히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대호가 은퇴하기에 렉스의 생산력과 활용성이 더더욱 필요하다. 이대호의 은퇴로 지명타자 자리가 비는 상황에서 렉스를 필두로 운동신경이 좋고 활발한 선수들을 동시에 기용하는 운영도 가능해진다. 계약 과정에서 난관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렉스의 재계약은 롯데의 오프시즌,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중대 사안이 될 전망이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