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7회 말 홈 팀의 공격이다. 1사 1루에 모종(?)의 긴장감이 돈다. 사실 스코어는 9-3이다. 별로 그럴 일은 없다. 다른 이유 하나가 있다.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대기록이 걸렸기 때문이다. (24일 고척돔, 롯데-키움전)
문제의 타자가 등장한다. 이닝 보드에 기록이 뜬다. '2루타, 직선타, 안타, 3점 홈런.' 뭔가 하나가 필요하다. 그것만 있으면 큰 일이 완성된다. 상대라고 모를 리 없다. 그래도 피할 수 없다. 승부다. 초구 유인구는 속지 않는다. 2구째 또 같은 공이다. 126㎞ 포크볼이 존으로 통과한다. 날카로운 파울볼이다.
카운트 1-1에서 3구째도 거침없다. 이번에도 포크볼(125㎞)이다. 살짝 타이밍을 뺏긴 스윙이다. 그러나 타구는 만만치 않다. 꽤 빠른 속도다. 문제는 방향이다. 아차, 1루수 정면이다. 3-6-3 더블플레이. 그걸로 이닝 끝이다. 장갑을 벗으며 섭섭한 표정이다.
“사이클링 히트는 작년에도 한 번 해봤어요. 전혀 아쉽지 않아요. 4안타 경기를 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쉬울 뿐이죠. 그래도 홈 최종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서 기분은 좋네요.” (이정후 경기 후 코멘트)
하긴. 틀린 말 없다. 사이클링 히트가 대단한 기록은 맞다. 그렇다고 가산점 붙는 건 아니다. 게다가 가장 어려운 3루타(올시즌 10개)가 남았다. 의식하면 괜히 부담감만 생긴다. 어차피 4안타다. 타율을 위해서는 실속이 중요하다.
아무튼. 대단한 스퍼트다. 전날 4개, 이날은 3개다. 이틀 동안 7안타를 몰아쳤다. 최근 10경기에서 42타수 18안타(0.429)로 호조다. 덕분에 타율이 0.348까지 올라갔다. 2위 박건우(0.343), 3위 피렐라(0.340)와 제법 벌어졌다. 2년 연속 수상을 향해 순항 중이다.
멀티 히트 게임이 55번이나 된다. 4안타 경기도 세 번 했다. 그렇다고 똑딱이는 아니다. 장타율도 0.577로 가장 높다. 어디 그 것뿐이겠나. 최다안타(184), 타점(108), 출루율(0.420)에서도 발군이다. 무려 5관왕 페이스다.
KBO 시상 부문은 아니지만 OPS도 1위다.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하면 0.997이다. 이유는 홈런이 많아진 덕분이다. 22개(공동 6위)로 베스트 시즌이다. 2020년 15개를 훌쩍 넘어섰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지점이 있다. 삼진은 오히려 줄었다는 점이다. 30개로 규정타석 타자 중 가장 적다. 이 부문 (많이 당한 순으로) 상위권은 한유섬(132K, 20HR), 박병호(131K, 33HR), 나성범(129K, 21HR)다. 이들보다 100개가량 삼진을 덜 당했다. 반면, 한유섬과 나성범보다 홈런은 더 쳤다. 자신의 6번 시즌 중 최소치이기도 하다(67→58→40→47→37). 조금 더 따져보자.
작년까지 홈런은 시즌당 8~9개 정도다. 이게 3배 정도 많아졌다. 반면 삼진은 오히려 줄었다. 10타수당 1개꼴이었는데, 올해는 17.6타수당 1개다. 홈런은 3배 늘고, 삼진은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삼진은 세금 같은 것이다. 홈런을 많이 칠수록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런 정설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타자다.
그나마 인간적인 숫자가 하나 있다. 그라운드 병살타다. 이날로 10개가 됐다. 2019년 15개, 2020년 16개에 이어 세번째 두자리수다. 장성우, 오지환, 소크라테스와 같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