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외부 FA 시장에서 지갑을 열어 공격력 강화를 노렸던 KT 위즈. 시즌 막바지까지 전략이 적중하는 듯 했지만 하필이면 3위 싸움이 치열할 때 야심차게 영입한 30억 거포가 부상 이탈했다. 디펜딩챔피언에게 타격 부진이 극에 달했던 작년 10월의 악몽이 엄습하고 있다.
갈 길 바쁜 KT 위즈는 지난 10일 부동의 4번타자 박병호가 발목을 다치는 초대형 악재를 맞이했다. 고척 키움전에서 2회 좌중간으로 안타를 날린 뒤 2루 베이스를 들어가는 과정에서 태그를 피하려다 우측 발목을 접질린 것. 추석 연휴라 아직 전문의 검진은 받지 못했지만 이강철 감독은 “올해는 끝난 것 같다. 인대를 다쳤기 때문에 1~2개월로는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시즌에 앞서 3년 총액 30억원에 KT맨이 된 박병호는 FA 계약 첫해를 맞아 120경기 타율 2할7푼3리 33홈런 93타점 OPS .894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즌 초반 간판타자 강백호가 부상 이탈했을 때 중심타선에서 영양가 있는 홈런을 펑펑 쏘아 올렸고, 그 결과 2위 호세 피렐라(24개, 삼성)에 무려 9개 앞선 홈런 부문 단독 선두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박병호는 올해 유독 부상선수가 많은 KT를 3위 싸움까지 이끈 장본인이었다.
4번타자의 부상으로 이강철 감독의 근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중심타선의 단순한 전력 약화를 넘어 라인업 전체의 구심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올 시즌 점수가 필요할 때마다 박병호의 호쾌한 스윙에 기대를 걸었던 KT였기에 이번 부상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11일 고척 키움전에서 박병호 없는 라인업으로 0-5 완패를 당한 터. 이로 인해 해결사 부재에 시달렸던 작년 10월의 악몽까지 스멀스멀 떠오르고 있다.
KT에게 2021년 10월은 그야말로 고난의 시간이었다. 9월 한때 2위 삼성에 무려 5.5경기 앞선 선두를 유지했지만 9월 말부터 6승 3무 12패의 부진을 겪으며 10월 23일 삼성에 1위를 내줬고, 타이브레이커를 거쳐 우여곡절 끝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문제는 타선이었다. 당시 베테랑 유한준, 박경수가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했고, 황재균, 장성우 등 다른 해결사들까지 동반 슬럼프를 겪었다. 10월 득점권타율은 한화와 함께 리그 최하위(2할9리)였다.
작년처럼 1위 도전은 아니지만 KT는 올해도 상위권에서 치열한 순위싸움을 펼치고 있다. 3위 키움에 0.5경기 뒤진 4위에서 매 경기 순위가 뒤바뀌는 살얼음 승부를 벌이는 중이다. 다행히 5위 KIA와의 승차는 7경기로 벌어져 있지만 수원KT위즈파크에서의 첫 가을야구를 준플레이오프로 치러야 2연패를 향한 희망을 조금이라도 더 키울 수 있다.
박병호가 빠진 KT 라인업의 키플레이어는 강백호다. 강백호가 이탈했을 때 박병호가 역할을 한 것처럼 강백호 또한 타격 부진에서 벗어나 박병호의 역할을 대신할 필요가 있다. 44경기 타율 2할4푼4리, 최근 10경기 타율 2할1푼2리로는 절대 국민거포의 공백을 메울 수 없다. 강백호가 반등해야 위즈파크의 첫 가을야구가 준플레이오프가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타자가 좋으면 승리를 하고, 투수가 좋으면 우승을 한다는 말이 있다. 프로야구에서 마운드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이지만 그 전에 일단 쳐야 경기를 이겨 우승으로 향할 수 있다. 박병호 없이 치러야하는 남은 19경기. KT가 1년 전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고 목표인 정규시즌 3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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