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점의 넉넉한 리드에서도 필승조를 호출해야 안심이 된다. 주전들의 부상과 더딘 세대교체로 헐거워진 두산 뒷문의 씁쓸한 현실이다.
지난 9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 한화의 시즌 14차전. 두산은 6-0으로 앞선 7회 예상과 달리 시즌 평균자책점 2점대에 14홀드를 기록 중인 필승조 정철원을 마운드에 올렸다. 정철원은 필승 카드답게 선두 이도윤의 안타에 이어 마이크 터크먼-노수광-노시환을 연달아 삼진 처리한 뒤 7회 임창민에게 마운드를 넘겼지만 ‘왜 넉넉한 리드에서도 정철원이었나’라는 의문이 든 게 사실이었다.
2018 두산 2차 2라운드 20순위로 입단한 정철원은 1군 첫해 47경기 4승 3패 3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점 2.56으로 활약 중이다. 5월 6일 데뷔와 함께 두둑한 배짱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며 사령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에 힘입어 빠르게 필승조로 변신해 이기는 상황에서 든든하게 리드를 지켜왔다. 정철원은 올 시즌 두산이 발굴한 최고 히트상품이다.
김태형 감독이 그런 정철원을 6점 리드에서도 등판시킨 이유는 간단했다. 스코어 차이가 크든 작든 정철원만큼 7~8회를 막을만한 투수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10일 잠실에서 만난 김태형 감독은 “정철원, 홍건희 빼고는 6점 차를 안전하게 갈 수 있는 투수가 없다”라고 씁쓸해하며 “이기고 있을 때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앞을 먼저 막아놔야 뒤를 편하게 갈 수 있다. 먼저 2~3점을 준 뒤 후반부를 맞이하면 그만큼 경기가 힘들어진다”라고 강조했다.
9일 기준 두산 1군 엔트리 내 불펜투수는 정철원을 비롯해 홍건희, 김지용, 임창민, 김명신, 이승진, 이병헌, 박웅, 박신지, 전창민 등 총 10명이었다. 마무리 홍건희와 이날 6회 등판한 김명신을 제외했을 때 사령탑의 말대로 한 이닝을 통째로 맡길만한 투수가 마땅치 않았다. 김지용, 이승진은 여전히 기복이 있고, 이병헌, 박웅, 박신지, 전창민은 1군서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하는 신예들이다.
그러나 시즌 9위로 이미 가을야구가 멀어진 상태서 6점 차 필승조 등판이 의미가 있냐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어린 투수들을 기용해 일찌감치 경험을 쌓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다. 이에 김 감독은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 젊은 투수들이 많이 나가면서 리빌딩 이야기 나오는데 지금 세대교체를 하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확실히 그었다.
정철원의 6점 차 등판 뒤에는 기존 뒷문 자원들의 부상 및 부진도 자리하고 있다. 마무리 김강률과 셋업맨 박치국이 여전히 2군에서 재활 중이며, 제2의 권혁과 배영수를 노리고 영입한 임창민, 김지용은 방출 신화를 쓰지 못했다. 윤명준, 이형범 또한 잠실보다 이천 생활이 익숙한 상황.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은 2군에 있고, 갓 입단한 신예들이 1군에 있으니 리드 상황에서 결국 쓰는 투수만 쓰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KBO리그 최초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빛나는 두산 왕조가 막을 내릴 위기에 처했다. 24경기를 남겨둔 가운데 포스트시즌 마지노선인 5위 KIA에 11경기 뒤지며 가을야구행이 희미해진 상황. 이제는 지나간 영광을 뒤로 하고 새로운 베어스 왕조를 위해 선수단을 재편해야할 때다. 특히 불펜의 경우 필승조와 추격조의 전력 차를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다. 매 경기 가을야구를 연상케 하는 총력전은 지금 시점의 두산 야구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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