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임창용을 꿈꾸던 사이드암 투수 엄상백(26)이 견고한 KT 선발진을 뚫었다. 이강철 감독도 인정한 에이스로 KT의 에이스로 선발 로테이션에 안착했다.
이강철 감독은 7일 수원 한화전을 앞두고 “상백이가 길게 갈 것이다. 현재 우리 팀 에이스 아닌가”라고 믿음을 나타냈다. 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엄상백은 6이닝 6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 호투로 KT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8승(2패)째를 거두며 평균자책점도 3.23으로 낮췄다. 9이닝당 탈삼진은 9.3개, 9이닝당 볼넷은 2.9개. 이 모든 수치가 엄상백의 커리어 최고 성적이다.
이날 엄상백은 최고 152km 직구(36개), 체인지업(52개), 슬라이더(10개)를 구사했다. 90구를 넘긴 뒤에도 150km 강속구를 연이어 꽂는 스태미너를 보였다. 올해 직구 평균 구속이 146km인데 선발 전환 뒤에도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는다. 최근 6경기 연속 7개 이상 삼진을 잡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지난 1일 수원 LG전에선 7이닝 3피안타 1볼넷 1사구 13탈삼진 무실점으로 데뷔 후 최고 투구를 펼쳤다. 이어 한화전까지 2경기 연속 직구 평균 구속이 149km까지 나올 정도로 힘이 넘친다.
덕수고 출신으로 지난 2015년 KT에 1차 지명된 엄상백은 강속구 사이드암 투수로 주목받았다. 데뷔 초부터 엄상백은 “임창용 선배님 같은 파워피처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군입대 전까지 주로 구원으로 나섰지만 제구 난조로 잠재력을 터뜨리진 못했다.
2019년을 끝으로 상무에 입대한 엄상백은 선발로 풀타임 시즌을 보냈고, 지난해 8월 전역 후 대체 선발로 KT 우승에 힘을 보탰다. 올해도 구원으로 시작했지만 윌리엄 쿠에바스의 부상과 배제성의 부진으로 대체 선발로 나섰다. 팀 사정에 따라 선발과 구원 보직을 계속 옮겨 다녔다.
하지만 지난달 7일 수원 한화전부터 최근 6경기 연속 선발로 나서며 선발 한 자리를 꿰찼다. 이 감독은 “(지금 상태로) 배제성이 선발로 들어오기엔 엄상백이 너무 좋다. 다들 인정한다. 이대로 가야 한다”고 남은 시즌 엄상백의 선발 고정을 선언했다. 커리어 대부분을 마무리투수로 보냈지만 2001~2003년 삼성 시절 3년 연속 풀타임 선발로도 특급 활약을 한 임창용처럼 엄상백도 리그에 보기 드문 강속구 사이드암 선발로 떠올랐다.
엄상백은 “보직에 불만을 갖지 않고 내가 해야 할 것에 집중했다. 시범경기 때부터 시즌 초반까지 계속 안 좋았는데 무너지지 않고 버틴 게 헛되지 않은 것 같다”며 팀 사정상 잦은 보직 변경에 대해선 “기분이 좋았다면 거짓말이다. TV에 잡히지 않았지만 (불펜에서) 몸도 많이 풀었다. 몸을 풀었는데 안 던지면 그게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점수 차이가 어떻게 되든 무조건 1이닝만 던지려고 했다. 힘들어도 내가 해야 할 것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선발로도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는 그는 “몸이 막 그렇게 근육질은 아닌데 웨이트를 꾸준히 하면서 많이 먹고 있다.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없다. 원래부터 힘은 좋았다”며 탈삼진 증가에 대해선 “작년부터 올해 초반까지 직구와 체인지업을 던질 때 폼 차이가 많이 났지만 지금은 똑같은 폼에서 나오고 있다. 체인지업을 많이 던져 타자들에게 자주 보여주다 보니 직구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역으로) 투스트라이크 이후 직구 승부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KT가 한국시리즈에서 4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엄상백은 마운드에 설 기회가 없었다. 지금 페이스라면 올해는 포스트시즌 큰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구위형 투수가 위력을 발휘하는 가을 무대에서 그의 가치가 더욱 빛날 수 있다. 엄상백은 “제가 무슨 포스트시즌 선발을…”이라며 자세를 낮춘 뒤 “진짜 욕심 없다. 어느 자리든 팀에서 나가라는 대로 똑같이 감사한 마음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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