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건 언젠가 시들고, 영원한 건 절대 없다. KBO리그 첫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맹위를 떨치던 두산 베어스 왕조가 급격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순위싸움이 한창인 시기에 미라클 도전이 아닌 리빌딩을 신경 쓰는 모습이 참으로 낯설다.
두산은 지난 3일 잠실 삼성전에서 1-4로 패했다. 크게 낯설 건 없었다. 타자들이 득점권만 되면 허둥대기 일쑤였고, 승기가 넘어간 상황에서 영양가 없는 적시타가 터졌으며, 허경민, 김재환, 김재호, 정수빈 등 고액 연봉자들의 해결 능력은 자취를 감췄다. 두산은 그렇게 또 경기를 내주며 송일수 감독 시절이었던 2014년 4월 5일 잠실 KIA전 이후 3073일 만에 9위 추락의 수모를 겪었다. 김태형 감독이 2015년에 부임했으니 김 감독은 처음 경험하는 순위다.
2015년 첫 출범한 김태형호는 첫해부터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며 새로운 왕조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2016년 한 발 더 나아가 통합우승을 차지했고, 2017년 정규시즌 2위, 2018년 1위에 이어 2019년 다시 한 번 통합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2020년 3위를 거쳐 작년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는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두산은 2015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꿈의 무대인 한국시리즈에 출석했다.
그러나 올해는 어떤가. 주전들의 노쇠화와 잇따른 전력 유출로 8년 만에 두산 없는 가을야구가 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래도 약화된 전력으로 시즌 초반 2위 돌풍을 일으켰고, 8월 중순까지 줄곧 6위를 유지하며 미라클을 향한 희망을 키웠지만 8월 17일 8위 추락과 함께 5위와의 격차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두산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9위까지 순위가 하락했다.
포스트시즌 마지노선인 5위 KIA와의 승차는 무려 8.5경기다. 그리고 그 전에 삼성, NC, 롯데를 차례로 물리쳐야 한다. 시즌이 25경기밖에 남지 않은 두산에게 사실상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렇다면 결국 다른 하위권 팀들처럼 현실보다는 미래를 대비하는 게 나은 전략일 수 있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김 감독 또한 이를 인지하고 지휘 방향을 슬슬 그 쪽으로 잡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지난 2일 잠실 롯데전이었다. 김 감독은 대체 선발 박신지와 베테랑 임창민이 차례로 무너지자 박웅-전창민-최지강-김동주 순의 어린 투수들을 차례로 내보내며 1군 경험을 쌓게 했다. 그 동안 지든 이기든 불펜은 늘 김명신, 정철원, 홍건희가 대기했지만 이날 경기를 통해 두산의 현실적인 목표가 미라클이 아닌 리빌딩임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3일 잠실에서 만난 김 감독 역시 “앞으로 두산을 책임질 투수들이니 경험을 하게 했다. 어떻게 해야 1군에서 통하는지 본인들이 스스로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미래를 대비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두산은 화수분야구의 대명사답게 잠실과 이천에 미래가 유망한 자원들이 상당히 많다. 체계적인 군 입대 프로세스로 선수 수급의 선순환도 이뤄지고 있는 터.
이제 남은 29경기는 이들을 대거 테스트하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매 년 미라클에 도전했던 이 시기에 리빌딩을 진행하는 게 낯설지만 결국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지난 영광을 뒤로 하고 팀 연간 스케줄에 변화를 줄 때가 왔다. 두산은 지금 가을야구가 아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9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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