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냉정한 프로의 세계는 늘 경쟁과 긴장의 연속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그 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 한 번 내준 자리는 되찾기도 어렵다. 5명이 추가 합류한 9월 확대 엔트리에도 1군의 부름을 받지 못한 한화 내야수 이성곤(30)의 상황이 그렇다.
이성곤은 올해 2군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3할1푼1리(183타수 57안타) 2홈런 21타점 36볼넷 39삼진 출루율 .430 장타율 .399 OPS .829로 맹타를 치고 있다. 북부리그 출루율 1위, OPS 2위 타율 3위. 1군에 한 번쯤 올라갈 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5월7일 내려온 뒤 2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이성곤은 김인환과 유형이 겹친다. 김인환이 시즌 초반 1루 자리가 비었을 때 들어와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다. 다른 대체자가 필요하진 않다”고 말했다. 같은 좌타 1루수 김인환이 주전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1루 외에 수비 쓰임새가 제한적인 이성곤의 1군 활용도가 낮아졌다.
시즌 전 한화의 1루는 이성곤이 반 이상 확보하고 있었다. 지난해 6월25일 삼성에서 한화로 트레이드된 뒤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적 후 60경기 타율 2할6푼7리(172타수 46안타) 1홈런 24타점 29볼넷 OPS .758로 타선에 힘을 보탰다. 올해 개막 엔트리에도 들었고, 5월초까지 선발 1루수로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27경기 타율 2할6리(68타수 14안타) 무홈런 4타점 OPS .575로 기대에 못 미쳤다. 지난 5월6일 대전 KIA전에서 9회 대타로 나와 헛스윙 삼진을 당한 뒤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이튿날 수베로 감독은 “이성곤은 타석에서 참을성과 선구안이 좋지만 장타력을 더 보여줘야 한다. 지금보다 많은 장타를 칠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며 1루 포지션에 걸맞은 장타력을 키우길 바랐다.
이성곤이 2군에 내려간 사이 28세 늦깎이 신인 김인환이 갑자기 치고 올라왔다. 시즌 전 육성선수 신분이었던 김인환은 5월 첫 날 정식선수로 전환된 뒤 5월2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콜업 이후 두 번째 경기였던 5월4일 문학 SSG전에서 첫 홈런을 신고한 김인환은 5월 한 달간 5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수베로 감독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했다.
단숨에 주전 1루수 자리를 꿰찬 김인환은 88경기 타율 2할8푼(322타수 90안타) 15홈런 46타점 OPS .784로 활약 중이다. 팀 내 최다 홈런에 신인왕 유력 후보로 떠오를 만큼 빠르게 자리잡았다. 이성곤도 2군에서 꾸준히 엑스트라 훈련까지 소화하며 3할대 맹타를 휘둘렀지만 김인환의 성장으로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한화는 지명타자도 주축 내야수들의 수비 휴식을 위한 자리로 쓰이고 있어 1루가 아니면 이성곤이 뛸 자리가 없다. 그럼에도 9월 확대 엔트리에 부름을 받지 못한 건 의외다. 적어도 대타로는 활용 가능할 텐데 수베로 감독은 9월 첫 날 투수 정우람, 임준섭, 류희운, 내야수 이도윤, 외야수 이진영을 1군에 올렸다. 기운이 빠질 법도 하지만 이성곤은 이날 서산에서 롯데 2군을 상대로 3타수 2안타 멀티히트를 쳤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