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경험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
롯데 자이언츠 셋업맨 구승민(32)은 지난 28일 문학 SSG전에서 3-2로 앞선 7회말 마운드에 올라와 1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20번째 홀드를 달성했다.
이로써 구승민은 지난 2020년부터 3년 연속 20홀드 기록을 달성하면서 안지만, 주권, 정우영에 이어 KBO리그 역대 4번째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롯데 구단으로서도 당연히 최초의 기록.
불펜 투수로서 꾸준하게, 건강하게 마운드에 오르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기록. 홀드 기록을 공식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단 4명 만이 달성했다는 것을 보면 얼마나 힘든 기록인지 알 수 있다. 구승민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는 "와이프, 부모님, 동료 선후배들, 코칭스태프 분들 모두 좋아해주셨고 축하해주셨다. 팀 동료들은 모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얘기도 잘 안꺼냈다. 대신 기록을 달성하고 많이 축하해주셨다"라고 전했다. 이어 "기록이 다가올 수록 홀드 순간 좋은 기분을 생각만 하고 다음날 잊었다. 그래도 19홀드 때는 사람인지라 의식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부담 없이 마운드에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부담을 느끼니까 팀에도 안 좋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했던 게 빨리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후련하다"라고 웃었다.
청원고, 홍익대를 졸업하고 지난 2013년 신인드래프트 6라운드로 롯데의 지명을 받았다. 사실 입단 당시만 하더라도 투수 전향 4년차에 불과한 말 그대로 '미완'의 투수였다. 홍익대 2학년 때 내야수에서 투수로 전향을 했다. 그는 "사실 대학교 때 투수로 전향을 하지 않았으면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타자로는 방망이 재능도 없었던 것 같고 대신 어깨는 좋았다. 그래서 전향을 권유하신 것 같다"라며 "그때는 정말 멋 모르고 던지던 투수였다"라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결국 투구폼도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 마운드에 올랐고 그 과정에서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지난 2015년 6월3일 포항 삼성전 선발 등판해 '국민타자' 이승엽에게 통산 400번째 홈런을 맞았다. KBO리그 최초의 400홈런 대기록이었기에 구승민에게 한동한 '허용 투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는 그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와 압박감, 상황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구승민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하지만 그래도 기 죽지 않고 던졌던 투수였다. 그때 이승엽 선배님과 맞닥뜨린 순간은 저 밖에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때가 아니면 못 했을 경험"이라면서 "그때 만약 제가 승부를 하지 않고 피했다면,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 피하는 투수가 됐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되돌아봤다.
그리고 그 때의 마음가짐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볼넷을 주는 건 내가 피해서 주는 게 아니다. 내가 승부를 한다는 마음은 언제나 똑같고 변함없다. 무사 만루에서도 마찬가지다"라며 "그때 이승엽 선배께 맞은 홈런 때문에 맞더라도 승부를 하자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저에게는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상무에서 군 문제를 해결했고 상무에서 포크볼을 습득해 구승민의 위닝샷이 됐고, 대한민국에 단 4명 밖에 없는 투수가 됐다. 스스로를 토닥일 수 있는 자부심이 가득한 기록이다. 선발, 마무리보다 덜 주목받지만 이 자리가 얼마나 빛나는 보직인지를 알려주고 싶고, 처우 역시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그는 "저 혼자 달성한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무에서 박치왕 감독님도 저를 믿고 불펜 투수로 훈련시켜 주셨고 구단도 꾸준히 저를 믿고 기용을 해주셨다. 팀에서 나를 기용 안했으면 이런 기록을 달성할 수 없었다"라고 우선 구단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중간 투수로서 많이 없는 기록이니까 '내가 꾸준히 그런 상황을 잘 막았구나'라는자부심이 든다"라면서 "중간 투수가 많이 빛나지 않는 자리인데, 저 같은 투수들로 인해 불펜 투수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그 짧은 이닝을 던지기 위해 준비도 정말 많이 한다. 어린 불펜 투수들이 많이 빛났으면 좋겠다. 다리 역할도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라는 자부심과 포부를 밝혔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