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화는 왜 절정의 타격감인 호세 피렐라(33)와 승부했을까.
한화는 지난 28일 대구 삼성전에서 피렐라 한 명에게 당했다. 피렐라는 0-3으로 뒤진 3회 김민우에게 동점 스리런 홈런을 터뜨린 데 이어 9회 강재민에게 끝내기 솔로 홈런을 폭발했다. 피렐라가 4타수 3안타 4타점 1볼넷으로 맹활약한 삼성이 한화에 5-4 역전승을 거뒀다.
한화로선 9회말이 아쉬웠다. 4-4 동점 상황에서 올라온 마무리 강재민은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피렐라와 붙었다. 다음 타자가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윤정빈이라 피렐라와 승부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윤정빈은 5회 정강이 타박상을 입은 오재일 대신 6회부터 1루 대수비로 교체출장했고, 7회 루킹 삼진을 당했다. 1군 5경기 2타수 무안타. 다만 삼성 벤치에 대타 성공률이 높은 김태군과 김동엽이 대타 자원으로 남아있었고, 한화는 끝내기 주자를 공짜로 내보내는 것보다 피렐라와 조심스런 승부를 택했다.
강재민의 초구 슬라이더는 바깥쪽 낮게 원바운드로 들어갔다. 이어 2구째 슬라이더를 바깥쪽 존으로 집어넣지만 피렐라가 작정한듯 풀스윙을 돌렸다. 배트 끝에 공이 제대로 걸리면서 타구는 좌측 담장 밖으로 훌쩍 넘어갔다. 끝내기 홈런. 결과적으로 한화의 무모한 승부였다.
30일 대전 KIA전이 우천 취소된 후 인터뷰에서 수베로 감독은 이틀 전 상황을 복기했다. 그는 “고의4구로 승부를 하지 않았다면 끝내기 홈런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면서 “팀의 마무리투수가 투아웃을 잡은 상황이었다”고 돌아봤다. 투아웃을 잘 잡은 마무리에게 고의4구 지시는 자존심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수베로 감독과 피렐라는 같은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윈터리그 때 자주 만난 인연이 있다. 수베로 감독은 “피렐라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다. 영웅 심리가 있는 선수라 그런 상황에선 평소에 잘 나오지 않는 코스에도 배트가 쉽게 따라나온다. 스트라이크보다 볼로 승부를 하게 했는데 슬라이더가 조금 밋밋하게 들어가면서 끝내기 홈런을 내줬다”고 설명했다.
수베로 감독은 피렐라의 공격적인 성향을 역이용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강재민이 나름 바깥쪽으로 조심스럽게 승부했지만 타율·안타·득점·출루율·장타율 등 타격 5개 부문 1위인 피렐라의 감이 워낙 좋았다.
피렐라와 승부를 들어가다 끝내기를 당한 팀은 한화뿐만이 아니다. KIA도 지난 10일 대구 경기에서 2-2 동점으로 맞선 연장 10회 1사 2,3루에서 고영표가 피렐라와 승부하다 끝내기 안타를 맞고 졌다. 이튿날 김종국 KIA 감독은 “1루를 채워 만루가 되면 밀어내기 볼넷에 대한 투수의 심리적 부담이 커진다. 최대한 어렵게 승부하려고 했는데 공이 약간 몰렸다”고 설명했다. 다음부터 비슷한 상황에서 피렐라와 어렵게 승부하는 팀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