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제(21일) 잠실 경기는 8회 말이 고비였다. 2-5로 뒤지던 LG의 공격이었다. 중심 타선이 걸린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마운드는 셋업맨 정철원이다. 7회부터 올라온 필승조다. 선두 타자 김현수가 조심스럽다. 초구 슬라이더, 2구째 포심이 모두 빠진다. 카운트가 2-0로 몰렸다.
3구째 사인 교환이 끝났다. 투구 동작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홈 플레이트에서 타임이 걸린다. 포수 박세혁이 오른손을 들며 일어섰다. 구심도 양 팔을 높이 들고 받아줬다. 하지만 정작 투수는 이미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멈추지 않고 공을 뿌린다.
(타임 소리를 듣고) 타석에서 뒤로 빠지던 타자는 화들짝 놀란다. 심지어 움찔하는 모습이다. 포수도 투수를 향해 두 손을 누른다. 차분히 하라는 시그널이다. 이 때부터다. 그라운드가 시끄럽다.
물러난 타자는 불만이 한 가득이다. ‘뭐야?’ ‘왜 그래?’ 하는 표정이다. 포수가 진정시킨다. 팔을 잡고 말린다. ‘아니예요. 일부러 그랬겠어요? 화 푸세요.’ 그런 동작으로 보인다. 하지만 씬은 이어진다. 마운드를 향한 강렬한 눈빛도 계속된다. 응원석이 반응한다. 수천개의 ‘우~’ 소리가 쏟아진다.
타자의 억울함은 이런 것이다. (타임을) 내가 건 것도 아니고, 타석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공을 뿌리면 어떻게 하냐. 위험한 것 아니냐. 뭐 그런 뜻이다. 갑작스러운 중단이 불만인 투수가 위협적인 반응인 경우는 간혹 있다. 이를 두고 SPOTV 양상문 해설위원은 이렇게 정리한다. “(타임을) 정철원 선수는 확인을 못 했거든요. 그러고 던졌기 때문에…. 근데 몸 쪽으로 간 게 아니기 때문에, 김현수 선수도 침착할 필요는 있습니다.”
게임은 이어졌다. 그런데 23세 투수는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영점이 흔들린다. 볼 2개가 연달아 빠진다. 스트레이트 볼넷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채은성과 문성주에게 안타를 허용한다. 1사 만루의 위기를 맞는다. 이제 자칫하면 친구(곽빈)의 승리를 날릴 지 모른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이다. 초구 포크볼(135㎞)에 너무 진심을 담았다. 너무 앞에서 꺾인다. 박세혁이 미처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가슴을 내밀었지만, 튀어서 뒤로 빠진다. 타석의 아도니스 가르시아가 팔을 돌린다. 주자 3명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이다.
하지만 결말은 허무하다. 공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 아슬아슬, 접전도 아니다. 서너 걸음은 차이 난다. 3루 주자가 객사했다. 불과 10분 전 대치극의 주인공이다. 1사 만루는 2사 2, 3루로 변했다. 후속타도 막혔다. 삼진으로 세번째 빨간 불이다. 승부는 사실상 그걸로 끝이다.
문득 사자성어가 몇 개 떠오른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새옹지마(塞翁之馬) 그런 것들이다. 어쩌면 다른 말이 생각나는 팬들도 있을 지 모르지만 말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