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요청으로 타자가 타석에서 벗어나는데, 투수가 공을 던져 화들짝 놀라는 해프닝이 있었다. 레이저 눈빛으로 짧은 신경전이 있었으나 경기 후 인사를 나누며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2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LG의 잠실 라이벌전.
8회말 2-4로 뒤진 LG의 공격, 선두타자 김현수는 2볼에서 다음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산 투수 정철원이 왼 발을 들어올리며 와인드업 하는 순간, 포수 박세혁이 손을 들어 타임을 요청했고 전일수 구심이 손을 들며 ‘타임’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미 와인드업 자세에 들어간 정철원은 박세혁을 향해 공을 캐치볼 하듯 던졌다. 타임 소리를 듣고, 타석에서 벗어나려던 김현수는 정철원이 공을 던지자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놀란 표정이었다.
이후 김현수는 정철원을 노려보며 뭔가 얘기하려하자, 박세혁이 미안하다는 제스추어로 말렸다. 마운드에 선 정철원은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경기가 재개되고 김현수는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했다.
경기 후 정철원에게 그 상황에 대해 물었다. 미묘한 신경전 영향으로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는지.
정철원은 “그 상황은 일단 투구 동작에 들어갔는데 세혁 선배님께서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포수에게 탁 던지자는 생각으로 던졌다. 볼넷을 준 이유는 (신경전 때문에 흔들려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김현수 선배님도 베테랑이시다보니까 경기를 사소한 그런 모습에서도 투수를 이기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잘못했고 누가 잘못했고 그런 건 전혀 없는 해프닝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기 후 양 팀 선수들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헤어질 때, 정철원은 김현수를 향해 90도 허리 굽혀 인사했다. 8회 상황 때 서로 의도하지 않은 일을 두고 후배로서 미안함의 표시였다.
이런 해프닝도 있었고, 정철원에게는 잊지 못할 경기였다. 김현수에게 볼넷을 허용한 후 1사 1,2루에서 문성주의 강습 타구에 정철원은 엉덩이를 맞았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타구를 잡으려 했으나 너무 빨라 몸에 맞고 3루쪽으로 굴절되면서 내야 안타가 됐다. 1사 만루 위기에서 폭투까지 했다.
그런데 공이 멀리 튕기지 않았고, 재빨리 홈 커버에 들어가 3루 주자 김현수를 홈에서 태그 아웃시켰다. 전화위복이 됐다. 2사 2,3루에서 가르시아를 삼진으로 잡고 실점없이 위기를 벗어났다.
마무리 홍건희의 갑작스런 담 증세로 인해 정철원이 9회까지 2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서 승리를 지켰다. 올해 1군에 데뷔, 가장 많은 이닝과 가장 많은 공(41구)을 던졌다. 그는 “친구 곽빈의 승리를 지켜줘 기분 좋다. 올 시즌 제일 재미있고, 제일 힘든 경기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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