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제(20일) 경기 전이다. 소박한 미담 하나가 들린다. 홈 팀 4번 타자에 관한 얘기다. 그라운드 키퍼(ground keeper), 그러니까 구장 관리하는 분들에게 선물을 드렸다는 소식이다.
방수 신발 10켤레였다. 이 분들 사무실 앞에 조용히 박스를 놔둔 것 같다. “요즘 같이 비 많이 올 때 수고가 많으시다. 비를 다 맞고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뭔가 해드리고 싶었다.” (박병호)
관리 소장이 구단 홍보팀에 연락해 소식이 전해졌다. 지원 파트 일용직, 아르바이트 직원, 볼 보이까지 모두 챙겼다. 생색내려는 것도 아니다. 구단이 배포한 사진 속에 주인공은 없다. 받은 사람의 흐뭇한 표정만 담겼다.
미담 주인공의 분노 폭발
토요일 저녁. 수원 구장이 북적인다. 오랜만의 인파다. 빈 자리가 안 보인다. 유료관중 1만9194명이 입장했다. 벌써 가을 분위기다. 왜 아니겠나. 4~5위 간의 일전이다. 긴장감이 팽팽하다.
내용도 접전이다. 초반부터 엎치락뒤치락한다. 1-0, 1-2, 3-2. 공수가 바뀌면, 우세도 달라진다. 그런 4회 말이다. 마술사들이 기대한 이닝이다. 2~4번 중심타선이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이다. 2번 배정대 3땅, 3번 앤서니 알포트는 K를 그렸다.
그리고 미담(주인공)의 차례다. 2사에 주자도 없겠다, 뭔가 하나 노릴 타이밍이다. 첫 타석에 적시타도 하나 쳤다. 부담감 덜고 잔뜩 도사린다. 상대라고 눈치가 없겠나. 조심스러운 승부가 들어온다. 볼-볼-파울-헛스윙. 어느 틈에 카운트 2-2다.
5구째가 승부다. 션 놀린이 오른쪽 다리를 높이 꺾는다. 이윽고 릴리스~. 그런데 웬걸. 바로 나오지 않는다. 내려온 다리가 잠시 멈칫거린다. 타자가 ‘어랏?’ 하는 순간 재시동된다. 하필이면 느린 커브(123㎞)다. 배트는 허둥거린다. 맥 빠진 빈 스윙이다. 결국 삼진, 이닝 교대다.
순간 타석에서 분노가 폭발한다. 그 자리에서 표정이 일그러진다. 헬멧을 힘껏 패대기 친다. 배트도 앞으로 내던진다. 미담 주인공의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다. “놀린 선수가 변칙 투구했거든요. 변칙 투구에 당했는데, 박병호 선수가 조금 기분이 안 좋았나봐요.” MBC Sports+의 박재홍 해설위원의 설명이다.
변칙의 달인 자니 쿠에토의 경우
‘변칙’ 하면 생각나는 투수가 있다. 레즈-로열스-자이언츠를 거쳐 지금은 화이트삭스에 있는 자니 쿠에토다.
그는 4~6가지 폼으로 던진다. 개중에는 상상을 초월한 방식도 포함된다. 완전히 2루쪽으로 틀기도 하고, 다리를 들고 한참 멈추기도 한다. 어떤 때는 아예 다리를 들지도 않는다. 예비 동작 없이 갑자기 기습을 감행한다.
가장 기발한 것은 어깨춤이다. 다리를 들고 어깨를 끄떡거린다. 횟수도 일정치 않다. 1~2번 또는 3~4번씩 자기 마음대로다. 이런 방식으로 포심, 투심,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를 던진다. 폼과 구종의 조합이 수십가지다.
그의 셧아웃 게임 다음 날이었다(2015년). 야후 스포츠의 제프 파산이 기자 정신을 발휘한다. 피해자들에게 뺨 맞을 질문을 던졌다. “그게 그렇게 치기 힘들어요?” 상대는 이안 킨슬러다. 한참 노려보더니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쩌면 억하심정이 담긴 대답인 지 모른다.
“자 보세요. 내가 주먹을 뻗을게요.” 킨슬러는 오른손을 한껏 뒤로 젖힌 뒤 파산에게 펀치를 날렸다. 코 앞 바로 1인치까지다(느낌상). 그러기를 연달아 3번, 네번째는 갑자기 주먹을 쑥 내민다. 뒤로 제치는 동작 없이 말이다. “이걸 피할 수 있겠어요? 못 피해요, 절대로.”
개막에 앞서 심판의 유권해석
놀린의 투구폼은 개막 이전부터 주목받았다. 쿠에토 못지 않게 여러가지 변칙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스리쿼터, 사이드암, 슬라이드 스텝, 노 스텝, 이중 킥, 토네이도 등등. 아마 미국에서는 별 문제 없었으리라. 훨씬 너그러운 곳 아닌가. 쿠에토의 경우처럼 말이다. (쿠에토도 주자가 있을 때는 속이는 동작으로 간주돼 보크 판정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이 문제에 보수적이다. 팀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기만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캠프 때 서재응 코치가 심판의 유권 해석을 요청했다. 최수원 심판은 이런 답변을 내놨다. “투 모션이든 원 모션이든 속이는 행동은 안된다. 기존 폼으로 빨리 혹은 천천히 던지는 것은 문제없지만 정지해서 속이려는 이중 동작은 안된다. 정지가 안된 상태에서 천천히 던지면 괜찮다."
그는 또 "미국은 폭넓게 수용해주지만 우리는 규칙대로 한다. 처음부터 이중 킥을 하거나 두 번 딛는 폼으로 계속 던지면 괜찮다. 원래 안 그러던 투수가 이중 킥을 하면 속이려는 것으로 판단해 제재를 가한다. 주의→ 볼판정→퇴장의 단계를 거친다. 폼은 웬만하면 변화를 주지 말라고 했다. 선수(놀린)도 ‘알겠다’고 인정했다."
김종국 감독도 지나친 기교에 부정적이다. “밸런스가 좋은 투수다. 하지만 너무 여러가지로 던지면 영점 잡기도 어려워진다. 그러지 않아도 밸런스나 컨트롤 모두 좋은 투수이기 때문에 딱 두 가지 폼 정도만 사용하면 좋겠다.”
‘변칙’이 ‘반칙’은 아니다. 놀린은 조금씩 경계를 활용한다. 어제(20일) KT전서도 간간이 트릭을 섞었다. 박병호 뿐 아니라, 알포드 등등이 타이밍을 뺏겼다. 하지만 심판도, 이강철 감독도 이의 제기는 없었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