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내야수 박찬호(27)는 시즌 저나지 위기의 남자였다. 같은 포지션에 1차 지명 ‘슈퍼루키’ 김도영(19)이 합류하면서 3년간 지켜온 유격수 자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김도영이 시범경기 타격왕(타율 .432)에 오르며 박찬호의 위기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박찬호는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지난겨울 근육량을 5kg 늘려 힘을 키워 왔다.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고정하면서 타구 질이 달라졌다. 시범경기부터 맹타를 휘두르며 개막전 유격수로 시즌을 시작했고, 전체 일정 3분의 2가 지난 시점까지 주전 자리를 굳건히 사수하고 있다. 올 시즌 팀의 94경기 중 80경기를 유격수로 선발출장했다.
타격이 일취월장했다. 311타수 86안타 타율 2할7푼7리 2홈런 32타점 22도루 31볼넷 37삼진 출루율 .338 장타율 .354 OPS .692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통산 타율 2할3푼6리 OPS .585에 그쳤던 타자가 아니다. 모든 비율 기록이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다. 리그 전체 유격수 중 박성한(SSG), 오지환(LG)과 ‘TOP3’를 이루는 성적이다.
3일 대전 한화전에도 박찬호는 0-2로 뒤진 6회 선두타자로 나와 좌전 안타로 포문을 열어 동점의 발판을 마련했다. 김종국 KIA 감독은 “박찬호가 컨택이나 출루 능력이 좋아졌다. 하체가 무너지지 않고, 왼 어깨가 일찍 열리지 않는다. 변화구 대처도 좋아지고, 정타를 맞히는 확률이 높아졌다”며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16.9%였던 박찬호의 삼진율은 올해 10.5%로 떨어졌다. 헛스윙 비율도 8.3%에서 6.8%로 감소하면서 타석의 질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박찬호는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 성적이 크게 하락했다.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 자리에서 체력적 부담이 있었지만 항상 뒷심이 약했다. 하지만 올해는 후반기 11경기로 표본이 적긴 하지만 타율 3할2푼(50타수 16안타) 3타점 5볼넷 5도루 OPS .762로 기세가 더 뜨겁다.
박찬호가 기대를 뛰어넘는 활약을 하면서 슈퍼루키 김도영도 출장 기회가 많이 줄었다. 시즌 초반 3루수로 기회를 얻었으나 타격에서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7월에 타격 반등세를 이뤘지만 박찬호가 공수에서 자리를 꽉 잡으면서 김도영은 대주자로 출장이 제한돼 있다. 타석에 설 기회가 많이 없다.
후반기 10경기 11타석에 들어선 게 전부. 제한된 타격 기회에서 9타수 2안타 1타점 무볼넷 2삼진을 기록 중이다. 김도영에게도 꾸준히 타격 기회를 주며 성장을 유도해야 하지만 5강 순위 싸움 중인 KIA 팀 사정상 박찬호에게 여유 있게 휴식을 주기도 어렵다. 물론 대주자로서 김도영의 쓰임새도 분명해 1군 엔트리에서 빼기도 쉽지 않다. 김도영은 3일 한화전에도 9회 대주자로 나와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올해 도루 8개로 빠른 발의 장기를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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