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페이크 성공, 그러나 이정후는 고개 숙인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2.08.03 08: 08

[OSEN=백종인 객원기자] 7회초 스코어는 5-4다. 홈 팀의 힘겨운 리드다. 상대는 1위팀. 밀리지 않으려 타일러 애플러(6회)까지 투입했다. 1사 후 김성현이 중전 안타로 문을 연다.
이어 추신수가 특유의 끈질김을 발휘한다. 실랑이 끝에 풀카운트 접전이다. 이윽고 6구째. 1루 주자에 런앤히트가 걸렸다. 스타트와 함께, 타구는 안타 예감이다. 매끄러운 빨랫줄 하나가 중견수 쪽에 널린다.
‘안타가 되면 1사 1, 3루.’ 행복한 상상이 펼쳐질 무렵이다.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린다. 김성현이 2루 직전에 멈춰 선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달린다. 3루까지 전력질주. 하지만 중견수 저격에 걸려들었다. 혼신의 앞 슬라이딩도 무위에 그쳤다. 완벽한 태그 아웃이다. 1사 1, 3루는 2사 2루로 달라졌다. 여기에 후속타 불발로 이닝이 끝났다. 동점 기회가 허무하게 날아간 셈이다.
SPOTV는 이 장면을 몇 차례 리플레이 시킨다. 역전이 없었다면 최고의 승부처였다. 특히 이정후의 센스가 폭발한다. 추신수의 타구 때 글러브를 앞으로 쭉 내민다. 마치 플라이 볼로 잡는듯한 페이크 동작이다.
백전노장 김성현이 여기에 걸려들었다. 2루 돌기 직전에 급브레이크 건 이유다. 미련이 남아 3루까지 달리긴 했다. 하지만 정확한 레이저를 이길 수는 없다. 허탈한 주자는 그대로 드러눕는다. 히어로즈 팬들과 벤치가 환호를 터트린다. 김재현 해설위원은 침이 마르도록 기막힌 플레이를 칭찬한다.
이정후의 페이크 동작에 2루에서 멈칫거리는 김성현   SPOTV 중계화면
그러나 이 플레이의 백미 따로 있다. 바로 당사자의 반응이다. 몇 차례 리플레이에서 상세하게 묘사된 천재 외야수의 리액션이다. 뜨거운 그라운드와는 전혀 다른 온도 차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하다. 철저하게 시크하다. 일말의 미소조차 없다.
물론 그런 캐릭터다.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묵직하고, 선이 굵다. 그러나 이날은 또다른 느낌이다. 뭔가 미안한 듯, 마음이 편치 않은 듯. 심지어 고개를 숙인다. 그런 모습이 대자로 드러누운 김성현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아마 속임 동작이라서, 정수가 아닌 꼼수라서 그럴 지 모른다. 누구나 흔히 하는 플레이인데 말이다.
그의 모습에서 예전 어느 전설이 떠오른다. 라이언킹이다. 엄청난 장외 홈런을 치고, “투수 기 죽인 것 같아서 미안하다”며 고개 숙인 채 다이아몬드를 돌던 모습 말이다.
김성현을 3루에서 잡아낸 뒤 고개를 숙이는 이정후  SPOTV 중계화면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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