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으로 말했는데 진짜 칠 줄 몰랐다.”
2일 대전 KIA-한화전. 4-4 동점으로 맞선 9회말 선두타자로 준비하던 하주석(28·한화)은 다음 타석에 나설 김인환, 김태연에게 “준비 안 해도 된다. 내가 홈런 치고 올게”라고 말했다. 김남형, 박윤 타격코치에게도 “뒤에 사람들 준비시키지 마세요”라고 말한 뒤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끝내기 홈런을 치고 홈에 들어왔다.
KIA 마무리투수 정해영의 초구 볼을 골라낸 하주석은 2구째 가운데 몰린 135km 포크볼을 놓치지 않았다. 잘 맞은 타구가 쭉쭉 뻗어나가 우측 담장 밖으로 향했다. 한화의 5-4 승리를 이끈 끝내기 홈런. 하주석의 데뷔 첫 끝내기 홈런으로 한화의 KIA전 9전 전패 사슬을 끊는 한 방이었다. 한화는 65일 만에 연승을 달리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만화 같은 예고 홈런의 감흥이 경기 후에도 가시지 않았다. 동료들로부터 물 폭탄을 맞아 유니폼이 흠뻑 젖은 하주석은 “장난으로 말했는데 진짜 칠 줄 몰랐다”고 스스로도 놀라워하며 “사람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 얼마나 많이 달라지는지 큰 사건 이후로 엄청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하주석이 말한 ‘큰 사건’은 지난 6월16일 대전 롯데전에 있었다. 당시 8회 삼진을 당한 하주석은 심판 볼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며 방망이를 땅에 내리쳤다. 심판의 퇴장 명령에 격분한 나머지 덕아웃에서 헬멧까지 집어던졌다. 벽을 맞고 튕겨져 나온 헬멧이 웨스 클레멘스 수석코치의 뒤통수를 맞아 논란이 커졌다. 결국 KBO로부터 10경기 출장정지, 300만원 벌금 징계를 받았다.
징계 기간 하주석은 2군 퓨처스, 육성군 선수들이 있는 서산에서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안 좋은 일로 많은 이슈가 됐다. 질타도 받고, 혼도 많이 났다. 벌금을 내고 징계도 받았다”며 “안 좋은 생각을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 연습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후배들이 운동을 더 했으면 하는 마음에 야간 연습도 한두 명씩 데리고 했다. 나중에는 내가 안 하려고 해도 후배들이 자꾸 부르더라. 덕분에 후배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지난달 5일 대전 NC전에서 1군 복귀한 하주석은 첫 타석을 앞두고 3번이나 고개 숙여 팬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처음에는 내가 기죽을까 걱정한 분들도 많았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복귀 첫 타석에서 죄송한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한 이후로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복귀 첫 타석 초구 번트 안타를 시작으로 하주석은 18경기 타율 4할1푼1리(73타수 30안타) 2홈런 13타점 OPS 1.023으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하주석은 “그 사건 이후로 야구장에서 생각을 많이 비웠다. 한 타석, 한 타석에 연연하지 않는다. 너무 좋아하지도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한 타석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힘든 게 없어졌다. 스트레스가 없어졌다고 해도 될 정도다. 긍정적인 생각들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며 “기술적으로도 크게 바뀐 게 없다. 더 나쁠 게 없고, 마음을 비우니 결과도 좋게 나온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제 나한테는 화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하주석은 “이번 일을 통해 느낀 것들이 많다. 어린 팬들도 보고 있고, 많은 팬 분들이 계시는 앞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며 “남은 시즌 우리 팀도 할 수 있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점수 차이가 나더라도 매 순간, 매 타석, 공 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