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올해는 선발로 안 쓰려고 했는데…”
두산 김태형 감독은 최근 취재진과 만나 2년차 좌완 영건 최승용(21)의 전천후 헌신에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최승용은 아예 처음부터 선발 기용을 생각하지 않은 투수다. 그러나 팀 사정 상 어쩔 수 없게 됐다. 원래는 중간에서 구속을 끌어올린 뒤 자리를 잡은 다음에 선발로 가는 게 맞다”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스프링캠프서 아리엘 미란다-로버트 스탁-최원준-이영하-곽빈 순의 선발진을 구상했다. 그러나 핵심 전력인 미란다가 캠프 때부터 어깨 통증을 호소하더니 4월 중순 어깨 근육 미세 손상으로 장기 재활에 돌입했다. 미란다는 3경기 평균자책점 8.22를 남기고 결국 지난달 13일 방출.
김 감독은 미란다의 대체선발로 주저없이 최승용을 낙점했다. 최승용은 지난해 인상적인 활약과 함께 이번 캠프에서 ‘국보’ 선동열 전 감독의 극찬을 들은 좌완 영건. 그는 첫 선발 경기였던 4월 29일 인천 SSG전(5이닝 무실점) 기대 이상의 호투에 이어 5월 11일 고척에서 키움을 만나 6이닝 무실점으로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와 선발승을 동시에 해냈다.
그러나 더 이상 선발 최승용의 활약은 볼 수 없었다. 캠프 때부터 긴 이닝 소화를 준비한 전문 선발 요원이 아니었기에 5월 19일 잠실 SSG전부터 6월 17일 잠실 KT전까지 선발 5경기서 평균자책점 10.00(18이닝 20자책)의 부진을 겪었다. 결국 6월 22일 인천 SSG전부터 구원으로 이동해 원래 계획대로 짧은 이닝을 소화하며 숨고르기에 전념했다.
최근 잠실에서 만난 최승용은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한 보직을 계속 하는 것보다는 체력적으로 힘들 수 있는데 일단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자체가 제일 좋다. 이것 또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며 “확실히 선발로 던지면 구속 저하를 느끼는데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올해 이렇게 경험을 쌓고 비시즌 때 보완을 하면 내년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성숙한 답변을 했다.
고통이 있으면 그에 따른 성장도 있는 법. 프로 2시즌 만에 전천후로 나서며 배운 점도 많다. 최승용은 “아무래도 한 시즌을 계속 풀타임으로 뛰고 있다 보니 체력 관리를 비롯해 타자와 싸우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마운드에 올라가면 최대한 약한 모습을 안 보여주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최승용의 올 시즌 성적은 32경기 3승 4패 4홀드 평균자책점 4.40. 데뷔 2년 만에 일취월장한 모습이 눈에 띈다.
오프시즌 선동열 전 감독의 칭찬도 올 시즌 전천후 활약의 원동력 중 하나다. 최승용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레전드인 선동열 감독님께서 칭찬을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그거 때문에 기사도 많이 나왔다”라고 멋쩍게 웃으며 “난 올 시즌 내내 선 감독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국보의 칭찬을 들었다는 자부심도 있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렇다면 선발과 불펜 중 어느 보직이 적성에 맞을까. 최승용은 “지금 당장 성적을 보면 중간이 더 나아보이지만 체력만 조금 보완을 하면 선발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라며 “중간투수 또한 중요한 보직이지만 아무래도 선발 쪽이 좀 더 비중을 차지한다. 한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게 선발의 가장 큰 매력이다”라고 밝혔다.
최근 곽빈까지 손바닥 부상으로 이탈하며 최승용은 지난달 29일 대전 한화전에서 다시 대체 선발을 맡았다. 기록은 4⅓이닝 무실점. 그러나 향후 추가 보직 이동은 없을 전망이다. 새 외국인투수 브랜든 와델이 4일 데뷔전을 앞두고 있고, 곽빈도 조만간 부상에서 돌아올 예정이다.
두산은 어쨌든 올 시즌 최승용이 있었기에 주축 선수들의 부상 공백을 최소화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팀 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한 그는 “작년보다는 올해 성적이 괜찮고, 더 많은 이닝을 던지고 있다”라며 “앞으로 더 욕심 부리지 않고 지금처럼만 그냥 부상 없이 던지고 싶다. 이렇게 던지면서 시즌을 마치는 게 올 시즌 목표”라고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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