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령이 아니었으면...".
지난 27일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의 경기가 펼쳐진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 9-1로 넉넉하게 앞선 KIA는 9회초 마지막 이닝에 들어서자 우완 김재열을 마운드에 올렸다. 아웃카운트 3개를 낚으면 가볍게 불펜의 필승조 소모 없이 낙승이 예고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재열이 심상치 않았다. 노진혁에게 우익수 옆으로 빠지는 2루타를 맞고 박준영은 볼넷으로 내보냈다. 박대온에게는 좌익수 옆에 떨어지는 2루타를 허용했다. 도태훈 좌전적시타, 손아섭 좌전적시타가 이어졌고 박건우는 또 볼넷을 내주었다. 서재응 투수코치가 중간에 마운드를 방문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KIA 불펜이 갑자기 바빠졌다. 마무리 정해영이 부리나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3점을 허용하며 4-9로 쫓겼다. 게다가 무사 만루위기가 이어졌고, 타자는 전날 홈런을 때린 4번 양의지였다. 여기서 한 방을 맞으면 8점 차 참사까지도 이어질 기세였다. 정해영이 올라와 양의지를 상대했다.
양의지는 초구가 들어오자 빠른 스윙으로 공략했다. 중견수 오른쪽으로 크게 넘어가는 강한 타구였다. 그러나 KIA 김호령이 재빠르게 타구 궤적을 판단하고 달려가 펜스 앞에서 잡았다. 해설을 맡은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김호령이 아니었으면 상당히 잡기 어려운 타구였다"고 호평을 했다.
"중견수가 소크라테스라면 못잡았다"는 주변의 평가도 나왔다. 5-9가 되는 희생플라이였으나 김호령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아웃카운트 1개를 잡아준 덕택에 정해영은 다음타자 삼진, 마지막 타자 좌익수 파울플라이로 잡고 경기를 마쳤다. 볼 6개로 아웃카운트 3개를 순삭하고 경기를 지켰다. 사실상 야수가 세이브를 하는 격이었다.
그만큼 김호령의 수비 하나가 가져온 효과는 대단했다. 김종국 감독은 "호령이는 잘하는 수비만 해주어도 된다. 홈런이나 안타는 바라지 않는다. 그것만 해줘도 된다"고 주문했다. 김호령의 수비가 가져오는 효과, 즉 상대의 득점을 차단하는 것 자체가 안타 혹은 홈런보다 영양가가 높다는 것이다.
김호령은 소크라테스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대신 중견수로 나섰다. 타율은 2할대 초반이지만 명품 수비로 팀 승리에 결정적인 공로를 세워왔다. 소크라테스가 없는 경기에서 KIA는 8승5패를 기록했다. 호성적의 바탕에는 김호령의 호수비도 있었다. 다음주 부상으로 이탈했던 소크라테스 브리토가 복귀한다. 아마 김호령이 중견수를 내주고 벤치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김호령의 수비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용법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우승 당시 KIA는 경기 후반이 되면 로저 버나디나를 중견수에서 우익수로 이동시켰다. 대신 김호령이 중견수로 나서 외야진의 수비력을 대폭 강화했다. 다만, 올해는 타격능력이 좋은 좌익수 이창진, 우익수 나성범이 있어 2017식 기용법은 쉽지 않아보인다. 김종국 감독의 해법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