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는 올해부터 사인 훔치기 방지 및 투수·포수 배터리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피치컴'이라는 첨단 전자기기를 도입했다. 포수가 팔목에 찬 패드의 버튼을 누르면 마운드 위 투수에게 구종과 코스에 대한 사인이 전달된다. 투수는 모자에 달린 작은 스피커를 통해 사인을 듣고 공을 던진다. 피치컴 사용은 의무가 아닌 선택인데 점점 사용하는 선수들이 늘고 있다.
사이영상 3회 수상에 빛나는 맥스 슈어저(38·뉴욕 메츠)도 대세에 따라 피치컴을 썼다. 28일(이하 한국시간) 뉴욕 양키스와의 홈경기에서 처음으로 피치컴을 활용해 투구했다. 포수의 손가락으로 사인을 받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어색할 법도 했지만 슈어저의 투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7이닝 5피안타 2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양키스 타선을 압도했다. 불펜이 리드를 날리는 바람에 시즌 7승이 불발됐지만 메츠의 3-2 끝내기 승리에 발판을 마련했다. 시즌 평균자책점도 2.28에서 2.09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결과에 관계없이 피치컴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미국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슈어저는 "피치컴이 투구에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불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기에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메이저리그 15년차 베테랑 선수답게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한 것이다.
소신 발언에는 이유가 있다. 슈어저는 "난 다른 투수들보다 복잡한 사인 시스템을 갖고 있었고, 그것에 항상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전자 기술에 의해 이런 부분이 야구 경기에서 배제됐고, 이제는 2루에서 사인을 훔칠 수 없다. 복잡한 사인 시스템을 갖고 있던 투수들은 그 이점을 누릴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슈어저는 "상대 사인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야구의 일부다. 경기의 일부를 빼앗아가는 느낌이 든다"며 "앞으로 피치컴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피치컴을 도입한 것은 과도한 사인 훔치기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지난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전자기기를 활용한 불법 사인 훔치기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이 2019년 시즌 후 뒤늦게 드러나 리그가 발칵 뒤집혔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등 다른 구단들도 사인 훔치기 의혹으로 사무국 조사를 받기도 했다.
메이저리그는 변화에 보수적인 정서가 있지만 피치컴은 선수들에게 대체로 호응을 얻으며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사인 훔치기에 예민한 투수들이 환영했다. 다만 슈어저처럼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든 듯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