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빈(32)은 가을에만 잘하는 선수일까. 그럼 두산은 정수빈의 가을 활약만 기대하고 거액 56억원을 투자한 것일까. 만일 가을야구를 못 가거나 순위가 일찌감치 결정된다면 정수빈이라는 고액 연봉자의 한 시즌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까.
두산 주전 중견수 정수빈은 경기가 없는 25일 전격 2군행을 통보받았다. 지난 10일 허리 부상으로 말소된 이후 2주 만에 시즌 두 번째 1군 엔트리 제외를 겪었다. 김태형 감독은 “부상 회복 이후 연습 기간이 짧았는데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아 2군으로 내렸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말소 이유는 간단하다. 야구가 안 된다. 최근 경기였던 24일 잠실 SSG전 4타수 무안타를 비롯해 76경기서 타율 2할1푼5리 21타점 12도루 OPS .537로 침묵했다. 테이블세터 전문 요원의 출루율이 .274이며, 최근 10경기로 한정하면 타율은 4푼3리까지 떨어진다. 타석에 23차례 들어서 단 1안타밖에 뽑아내지 못했다. 그런 정수빈의 올해 연봉은 6억원이다.
두산 프랜차이즈 스타인 정수빈은 2021시즌을 앞두고 원소속팀과 6년 총액 56억원에 FA 계약하며 ‘종신 베어스맨’을 선언했다. 계약 당시 “6년 보장으로 완전한 두산맨이 될 수 있어 영광스럽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활약을 다짐했다.
계약 첫해에는 시즌 시작과 함께 옆구리 부상으로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웠다. 복귀 이후에는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겪으며 6월 한때 타율이 1할8푼2리까지 떨어졌다. 수비력은 톱클래스였지만 저조한 타격으로 백업 김인태에게 외야 한 자리를 내주기까지 했다. 9월 초까지도 시즌 타율은 1할9푼7리에 머물러 있었다.
정수빈은 가을 사나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9월 중순 기적적으로 반등했다. 언제 부진했냐는 듯 무섭게 타격감을 끌어올렸고, 9월 월간 타율 3할7리, 10월 2할8푼8리의 활약 속 팀의 극적인 가을야구 진출에 공헌했다. 그리고 그 감을 포스트시즌까지 가져가며 준플레이오프 MVP를 거머쥐었다. 그의 3경기 성적 타율 4할6푼2리 5타점 장타율 .615 출루율 .563였다.
문제는 계약 2년차인 올해도 지난해와 패턴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올해는 최근 경기 도중 당한 허리 부상을 제외하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지만 시즌 타율이 줄곧 2할대 초반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6월 중순부터 '연봉 4800만원' 안권수와 '3000만원' 양찬열에게 밀리며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갈 길 바쁜 두산이기에 마냥 56억 외야수의 반등을 기다려줄 수만은 없다. 냉정히 말해 지금까지 많은 기회를 부여했다. 26일 만난 김 감독은 “열흘 동안 다시 몸을 만들면 상황을 봐서 올릴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가 다시 안 올라온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올라와야 다시 쓸 수 있다. 가을에 항상 좋았다는 것만 믿고 선수를 쓸 순 없다”라고 냉철한 시선을 드러냈다.
정수빈의 이탈로 두산 외야는 현재 김재환을 제외한 두 자리가 무주공산인 상태다. 그리고 화수분야구의 대명사답게 신예들이 콜업이 될 때마다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안권수는 입단 3년차에 잠재력을 터트리며 주전급으로 성장했고, 신예 양찬열에 이어 김태근까지 데뷔 타석에서 적시타를 터트리며 사령탑의 눈도장을 찍었다. 정수빈이 꼭 아니어도 되는 경기가 잦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56억 사나이를 마냥 벤치와 2군에 내버려둘 순 없는 법. 사령탑은 정수빈이 1번을 맡는 라인업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2년 연속으로 고액 연봉자가 부진을 겪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두산은 계속 순위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또 곧 있으면 정수빈이 강해지는 9월이 찾아온다.
김 감독은 “정수빈은 우리에게 분명 필요한 선수다. 열흘 뒤 컨디션을 체크해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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