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대전 KT-한화전은 무려 116분이나 우천 중단된 끝에 8회 강우콜드 게임으로 끝났다. KBO리그 역대 최장 시간 중단 타이 기록. 한화가 3-5로 뒤진 상황이었지만 7회 2점을 내면서 추격하는 흐름이었다. 역전에 대한 기대를 품은 관중들이 빗속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폭우가 내렸지만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은 채 관중석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몸을 흔들며 경기 재개를 기다렸다.
그라운드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정비해서 경기를 속개하려고 한 것도 관중들의 영향이 컸다. 이날 1루심이었던 박종철 KBO 심판팀장은 "강우콜드 선언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관중들이 '경기해, 경기해'라고 외쳤다. 팬들이 경기 재개를 원하는데 서둘러 강우콜드 결정을 할 순 없었다. 팬들을 생각해 경기를 진행하려 기다린 것이다"고 돌아봤다.
비가 다시 내리면서 경기는 KT의 5-3 강우콜드 승리로 끝났지만 밤 10시가 넘어서도 자리를 지킨 팬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상대팀 이강철 KT 감독도 인정했다. 이튿날 이 감독은 116분 중단에 대해 "어느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화가) 5-3으로 따라가고 있었고, 관중 분들이 경기장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며 나가질 않았다. 우리가 같은 상황이었어도 경기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3연전 첫 날부터 한화 팬들의 열기를 느꼈다. 경기 시작 2시간 30분 전부터 대전 야구장 입구에서 길게 줄지어선 관중들을 보곤 놀랐다. 이 감독은 "(오후) 4시부터 관중 분들이 길게 줄서서 기다리고 있더라"며 "한화가 (관중 동원에서) 꼴찌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한화 팬심을 치켜세웠다.
실제 한화는 올해 대전 홈 42경기에서 총 22만899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경기당 평균 관중 5260명으로 10개팀 중 8위. 순위가 높은 키움(4400명), NC(4377명)보다 더 많은 관중들이 꾸준하게 들어오고 있다.
한화의 팀 성적을 감안하면 놀라운 관중 동원력이다. 10위 한화는 25일까지 시즌 88경기에서 26승61패1무로 승률(.299)이 3할도 되지 않는다. 6월 이후로는 7승29패1무로 승률(.194)이 2할도 되지 않는다. 심각하게 좋지 않은 경기력으로 가을 야구는커녕 3년 연속 10위 꼴찌가 확정적이지만 팬심은 아직 완전히 식지 않았다. 지난 2008년부터 무려 15년째 계속 되는 길고 긴 암흑기에도 팬심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어 '보살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경기를 뛰는 한화 선수들도 팬심을 피부로 느낀다. 대체 외국인 투수로 들어와 5경기 평균자책점 1.03으로 연착륙한 예프리 라미레즈는 "팀 성적이 안 좋은데도 끝까지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인상적이다"고 했다. 올 시즌 한화에서 최다 12홈런을 터뜨리며 팬들로부터 알파카 인형만 8개를 선물받은 김인환도 "팀이 안 좋을 때도 항상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시는 팬들께 감사함을 느낀다. 남은 시즌은 이기는 경기를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일편단심 한화만 바라보는 팬들을 생각해서라도 남은 후반기에는 조금이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소 50승 달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남은 56경기에서 24승(32패)을 거두면 시즌 승률 3할5푼을 맞출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원정 승률을 높여야 한다. 대전 홈에서 16승26패(.381)로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지만 원정에서 10승35패1무(.222)로 크게 약했다. 26일부터 포항에서 시작되는 삼성과의 원정 3연전이 반등의 서막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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