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전반기 마지막 날이다. 7월 14일, 잠실 KIA전. 플레이볼 1시간 전이다. 홈 팀의 배팅 오더가 제출됐다. 뭔가 뭉클한 명단이다. 9명 중 4명의 이력이 그렇다. 흔히 연습생, 신고선수 등으로 불리는 육성선수 출신들이다. 박해민, 김현수, 채은성, 이상호 같은 이름들이다.
비단 이들 만이 아니다. 말이 지명이지, 하위 라운더는 험난한 출발선에서 시작된다. 1군은커녕, 2군 게임 뛰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7라운드 출신 유강남, 그리고 10라운드로 턱걸이 한 문성주도 떡~하니 한 자리씩 차지했다. 스타팅 9명 중 6명이 흙수저 출신이었다.
이날 게임은 듣보잡 출신들이 종횡무진했다. 팀 안타 11개 중 10개가 여기서 나왔다. 3회 김현수의 결승 3점홈런, 채은성의 쐐기 2루타. 두 중심 타자가 3안타씩 6안타를 합작했다. 게다가 박해민(2안타 3득점), 문성주(1안타 1볼넷)도 밥상을 잘 차렸다.
2루수 이상호는 결정적 호수비로 팀을 구했다. 0-0이던 3회 2사 만루서 최형우의 안타성 타구에 몸을 던졌다. 다이빙 후 2루 토스.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냈다. 투수 애덤 플럿코가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시한 수퍼 캐치였다. 타석에서도 안타 1개를 보탰다.
비단 이날 경기 만이 아니다. 올 시즌 트윈스를 이끄는 동력은 막강한 화력이다. 그 중심은 육성 선수, 하위 라운더들로 이뤄졌다. 이들 ‘개천의 용’들이 불을 뿜으며,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트윈스는 전반기 내내 최강의 타력을 보였다. 팀 기록은 10개 구단 중 독보적이다. 타율 1위(0.270), OPS 1위(0.748), 출루율 1위(0.345) 등을 석권했다. 무엇보다 잠실 팀으로는 이례적으로 홈런 1위(72개)를 달리고 있다. 그러면서 삼진은 512개로 가장 적다. 가장 많은 한화(791개)에 비해 279개나 덜 당했다. 이상적인 효율성마저 유지하는 셈이다.
3~4번 김현수, 채은성의 역할이 크다. 김현수는 정확성(타율 0.290ㆍ20위)을 조금 내려놨다. 대신 장타력과 클러치 능력으로 아이템을 갈아끼웠다. 홈런 2위(19개), 타점 2위(71개)로 중요한 대목에서 한방을 터트린다.
채은성의 역할도 크다. 4번 자리에 버티며, 정확도와 무게감을 절충했다. 타율은 팀내 가장 높은 7위(0.320), 홈런도 9개로 적지 않다. 덕분에 트윈스 타선은 좌우 밸런스를 유지한다.
문성주의 등장은 또다른 신선함이다. 10라운드, 전체 97번째로 입단한 된 그는 이제 신데렐라가 됐다. 57게임에서 0.343으로 장외 타격 1위를 달린다. 규정타석에 36개가 부족하다. 7월 타율만 0.381이다. 홍창기의 공백을 메우기 충분하다.
또 다른 육성선수 대기조도 있다. 절치부심 중인 서건창, 이형종이다. 두 말할 것 없는 즉시 전력들이다.
화려한 엘리트 코스, 거창한 드래프트, 거액의 입단 계약금, 폼 나는 스트라이프 유니폼. 덕분에 대단한 팬덤을 자랑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성과로 나타나지 못했다. 치열한 승부 세계에선 조연에 불과했다. 절실한 눈빛도 모르겠고, 흙 묻는 것도 싫어할 것 같다. 비웃음, 이죽거림이 들렸다. ‘도련님 야구’라는 비아냥이다.
그런 도련님들이 흙수저를 들었다.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을 이겨낸 커리어들이다.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를 이뤘고, 이루려 한다. 치열함과 절실함이다. 그걸로 껍질을 깼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