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투수들에게 속으면 안 되겠다.”
FA 시장에서 투수는 타자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30대 이후로도 꾸준히 활약할 수 있는 타자에 비해 팔과 어깨가 소모되는 투수는 전성기가 빠른 편이고, FA 장기 계약시 부상 리스크도 크다.
지금까지 KBO리그의 100억원 이상 FA 계약을 한 선수 10명 중 8명이 타자. 지난겨울 김광현(SSG), 양현종(KIA)이 FA 계약을 하기 전까지 100억원 클럽에 가입한 투수가 없었다. 윤석민, 차우찬 등 부상으로 실패한 FA들도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삼성이 좌완 백정현과 4년 38억원에 FA 재계약을 한 것은 주목할 만했다. 백정현은 지난해 27경기(157⅔이닝)에서 14승5패 평균자책점 2.63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팀의 가을야구를 이끈 기여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계약 당시 예상보다 후한 대우라는 평가가 많았다. 만 35세 베테랑으로 커리어 통틀어 2점대 평균자책점도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FA를 앞두고 일시적 활약일 수 있다”는 평가 속에 지난해를 백정현의 고점으로 본 다른 팀에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삼성의 투자는 첫 해부터 삐걱이고 있다. 올해 백정현은 14경기(73⅓이닝)에서 승리 없이 10패만 안으며 평균자책점 6.63에 그치고 있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19개의 홈런을 맞았고, 이닝당 출루허용(WHIP)도 1.61로 70이닝 이상 투수 34명 중 두 번째로 높다.
지난 5월말부터 6월 중순까지 3주 동안 2군에도 다녀왔다. 재조정의 시간을 가졌지만 지난달 중순 1군 복귀 후에도 5경기 연속 패전을 당하며 평균자책점 6.29로 반등이 없다. 직구 평균 구속은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지만 커맨드가 흔들리고 있고, 홈런 허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해까지 통산 9이닝당 피홈런이 1.09개였지만 올해 2.33개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백정현의 부진은 시즌 후 FA 시장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비 FA 투수들에게는 불똥이 튈 분위기. “올해 백정현을 보니 FA 투수한테 속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이 구단들 사이에 심심찮게 나온다. 한 관계자는 “투수 FA 영입은 신중해야 할 것 같다. 한 해 반짝 하는 투수들이 있을 수 있으니 판단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비 FA 투수로는 한현희, 정찬헌(이상 키움), 임찬규(LG), 이태양(SSG), 이재학, 원종현(이상 NC), 장시환(한화) 등이 있다. 이들이 각자 경쟁력을 유지하더라도 백정현 사례가 있어 구단들의 평가가 깐깐해질 수밖에 없다. 예비 FA 투수들로선 남은 시즌 백정현이 조금이라도 반등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waw@osen.co.kr